정부예산 자의적 집행 줄이려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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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08면

한 정부부처의 일선 실무자가 예산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계획을 세워 상사에게 제출해야 한다. 상사는 사업계획을 예산담당관실에 넘겨 심의를 받는다. 해당 정부부처의 자체 심의를 통과하면 기획예산처의 심의를 다시 받고 최종적으로 국회에 넘겨진다. 예산은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데, 이는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해 다수 국민의 견해와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서다.

예산안 최대한 명문화해 재량권 남용 막아야

그러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각종 사찰에 편법 지원했다고 알려진 특별교부세는 이런 예산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특별교부세는 구체적 사업내용을 정하지 않고 총 금액만 국회에서 승인된다. 따라서 그 집행 내역은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예산제도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있다. 국회 승인 이후에 특별한 지역에서 사업비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부처는 특별교부세의 지원 내역을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행정부 내부의 재량권이 적절히 행사만 되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악용될 때가 문제다. 고위 공무원들이 서로 담합해 사적 이익을 위해 이용할 여지가 있다. 이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저질러져도 이를 행정부 외부에서 파악하기 어렵다. 결국 특별교부세 제도는 행정부 내부의 재량권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예산집행의 재량권 등을 가능한 한 자세히 명문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 같은 선진국과 달리 매년도 예산집행에 대해 사업내용 중심의 규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행정부가 갖는 암묵적 결정사항들, 예컨대 고위 공직자 누구, 국회의원 누구의 관심사업이라는 것까지 과감히 명문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고위 공직자가 재량권을 남용하기 어렵고 특별교부세 제도는 건전해질 것이다. 국회가 ‘부대의견’을 내는 현행 제도를 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예산사업에 대해 지출방법을 규율할 수 있는 내용을 부대의견으로 충분히 기술하는 것이다. 이를 집대성해 별도의 규정집으로 발간하거나 예산세칙이라는 명칭으로 예산서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 예산법률주의가 채택되는 실익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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