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산책>구메혼인-가난.신분문제로 조용히 치르는 혼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널리 알리지 않고 하는 혼인.
「큰일 치른다」거나 「대사를 치른다」는 말이 있다.이 말은 큰 예식이나 잔치를 치른다는 말이요,흔히 혼례나 장례를 치르는것을 뜻한다.혼인은 확실히 人倫之大事다.그러기에 전통적으로 이혼인에 큰 의미를 두고 성대한 잔치를 베푸는 것이 우리의 관례였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대사를 크게 치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가세가 빈한하거나,신분에 차이가 나거나,드러내놓고 결혼할 수 없는 경우와 같은 때가 그러하다.
이런 경우에는 널리 알리지 않고 조용히 예식을 올리게 마련이다.이러한 혼인을 「구메혼인」이라 한다.그러니 「구메혼인」이란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드는 장가를 뜻하는 「도둑장가」보다는 나으나 대사라기에는 초라한 예식이라 하겠다.
「구메혼인」이란 한자말로 「穴婚」이라 할 수 있는 우리말이다.「구멍의 혼인」이란 뜻으로 「굼-의-혼인」이 변한 말이다.이러한 구조의 말로는 「구메농사」「구메도적」이란 말이 있다.
「구메농사」는 「굼의 농사」란 말로 작은 규모로 짓는 농사 곧 「穴農」을 뜻하는 말이다.「구메도적」이란 「굼의 도적」으로좀도둑을 뜻하는 말이다.
「구메혼인」이란 말의 용례는 碧初 洪命憙의 『林巨正』에 다음과 같이 보인다.
『말하자면 구메혼인이나 별로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鳳丹의결혼식 장면을 그린 것이다.「구메혼인」은 접사 「-하다」가 붙어 동사로 쓰이기도 한다.같은 『林巨正』에는 다음과 같이 쓰이고 있다.
『구메혼인하듯 소문없이 하는 혼인이라 손님도 없었고 구경꾼도없었다.』 朴甲洙〈서울대교수.국어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