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失鄕民 할머니의 恨맺힌 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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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쟁 일으켜 우리 실향민들 가슴에 한을 심어놓더니 결국 남북 정상회담도 못하고 죽어버린 거좀 보라.』 『나는 金日成 죽었다는 얘기 듣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이 마치 해방될때 기분 같더라니.』 11일 오후7시 서울도봉구수유동 통일연수원 휴게실. 2박3일간의 통일연수 과정에 참가한 평안남도 어머니회 소속1백40여명의 실향민 할머니들은 이북사투리를 마음껏 쓰며 金日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부모.형제와 생 이별한채 한평생을 보냈다는 회한때문인지 할머니들 대화의 대부분은金에 대한 성토 일색이다.
平壤 上需里가 고향인 全成玉할머니(61)는 『6.25때 단발머리 여고생으로 가족과 생이별해 이제 할머니가 돼버렸는데 이게다 누구 때문이었갔어.
사람이 죽으면 다 용서가 된다지만 실향민들 만큼은 죽어도 金日成을 용서 못할기야』라며 아직도 삭혀지지 않은 분노를 터뜨렸다. 平壤 下水口里 출신의 李美蓮할머니(63)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하지만 金日成이 죽었다고 통일이 금방 오는 것이 아니니까 먼저 우리가 마음을 가다듬고 단합하는 것이 우선 아니갔어』라고 말한다.
『전쟁을 일으킨 죄값을 받은것』『너무 늦게 죽었다.얼마나 시원한지 모르겠다』등의 극단적 표현도 많았지만 한평생 이산의 한을 품고 살아왔다는 동질감 때문인듯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郭仙富할머니(66)는 『요사이 TV를 보면 사회지도급인사들이나와서 金日成한테 「그분께서」나 「돌아 가셨다」는 존칭을 하는데 그거이 아마 점잖은 표현이란걸 알면서도 가슴속에서 열불이 나는 거야 어쩔수 없지 않겠나』라며 실향민들의 한을 몰라주는 「점잖은」 사람들을 야속해 했다.
『그게 다 세상 아니갔어.이젠 우리 恨일랑 접어두자고.북한을자극해서 金正日이가 핵개발 계속하고 남북회담 안한다고 버티면 어쩌갔소.죽기전에 고향땅 한번 밟아보고 우리 오마니, 우리 피붙이들 한번 손이라도 잡아봐야 눈을 감을것 아님 메….』 한 할머니의 말에 성토를 앞세우던 다른 할머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듯한 표정들이다.실향민 할머니들의 한맺힌표정과 평양 金日成광장에서 무릎꿇고 오열하는 북한주민들.전후세대이고 분단의 아픔을 책에서만 배운 기자 에게 두개의 상반된 장면이 자꾸 겹쳐져왔다.
〈柳權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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