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연극가 변질된 페미니즘극 쏟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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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여름 연극가에 여성주의 연극이 크게 늘고있다.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모녀.부부갈등등 천편일률적인 소재를 다루거나 내용과는 아무 관계없이 이름만 내세운 「억지 여성연극」이 많아 「여성의시각으로 여성의 삶을 조명하는」여성주의 연극의 본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이들중에는 「남편의 성기를 잘라달라는 소송을 다룬」(『장아누이의 반바지』)반여성주의 작품이나 「외간남자와 정을 통한후 남편을 살해하는」(『남편을 죽이는 서른가지 방법』)내용까지 버젓이 여성주의란 이름을 내걸고 공연되고 있는 실정이 다.
이에 대해 평론가 朴광수씨는『최근들어 페미니즘극이 여성의 주체성찾기란 본뜻을 잃어버리고 급속도로 여성용 대중연극화되고 있다』며 이는『장삿속에 급급한 극단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진지한 이해나 접근없이 주부관객 유치를 위해 심지어 여성 이 나오는 연극은 무조건 여성주의 연극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공연중인 여성주의 연극은 모두 6~7편.지난달까지 한달 평균 2~3편에 불과하던 것에 비해 3배가량 급증했다. 이는 자녀들의 방학으로 여가가 늘어난 30~40대 주부관객들을 겨냥해 극단마다 여성취향의 작품제작에 열을 올린 결과로 풀이된다.
공연중인 여성주의 연극중 그나마 여성얘기를 어느정도 진지하게다루고있는 작품은 극단 산울림의『러브 차일드』(연출 채윤일)와극단 모임의『그리고 그들의 뒷모습』 정도.
『러브 차일드』는 호주의 여성작가 조안나 머레이 스미스의 최신작으로 사생아로 버려진 딸이 장성한뒤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온다는게 극의 줄거리.『그리고 그들의 뒷모습』은 15년만에 찾아온 딸과 어머니의 어색한 해후를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연극은 포괄적인 여성문제를 깊이있게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녀간의 갈등과 화해」라는 지금까지 우리 여성주의 연극의 도식적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극단 한양레퍼토리의『장아누이의 반바지』와 극단 아름의 『남편을 죽이는 서른가지 방법』은 억지 여성주의 연극의 대표적인 사례. 『장아누이의 반바지』는 여성이 권력을 장악한 사회를 냉소적으로 풍자한 작품으로 등장여성들의 성격도 극히 편협하고 모자란 인물로 그려지는 反페미니즘극.
『남편을…』은 정신과 의사와 정을 통한 아내가 남편을 완전범죄로 살해하는 내용을 담고있는 미스터리 추리극.
추리소설인 원작을 억지로 여성주의 연극으로 뜯어고쳐 오히려 극의 추리구조를 망쳐놓고 있다.
『장아누이의 반바지』나 『남편을…』은 굳이 여성주의 연극임을내세우지 않아도 좋을 흥행성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페미니즘극으로 광고,결국 관객들을 기만하는 결과를 자초한 셈이다. 이밖에 극단 76이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을 옴니버스형식으로공연하는『플레이』도 광고와는 달리 여성주의 연극과는 거리가 멀고 실험극장의 손숙 모노드라마『셜리 발렌타인-그여자의 자리』는여성의 자리찾기를 남편과의 헤어짐이란 단순결론으 로 처리하고 말아 여성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결책을 제시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다. 평론가 金미도씨는『우리 연극계에는 진정한 페미니즘극이 전무한 실정』이라며『관객동원을 위한 감각적.말초적 멜로드라마를 페미니즘극의 전부로 인식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한 결국 관객들도 이를 외면하게 될것』이라고 경고했다.
〈李正宰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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