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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어떤 인물인가/“폭군­실용주의자” 엇갈리는 두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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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편협·충동적… 한번 입여면 2∼3시간/변화에 민첩 “통큰 지도자” 평가도
「모든 방면에 해박하고 통이 큰 지도자」와 「편협하고 충동적인 독재자」.
김일성 주석 사망이후 최고 권력자로 떠오른 김정일에 대한 너무나도 엇갈린 두 평가다.그에 대한 평가는 학계나 외교관들 사이에도「유능과 무능」「실용주의자와 절대독재자」라는 극단을 오간다.
일찌감치 김주석의 후계자로 지목돼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고 최근 몇년동안 사실상 북한의 실권자로 군림해 왔음에도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이는 북한 사회의 폐쇄성으로 인해 그의 신상과 언행이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수십년 베일속 상징조작
더욱이 북한 정권이 후계 구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수십년동안 그에대한「상징 조작」을 해온 탓에 국제사회에 종잡을 수 없는 인물로 비춰져 왔다.
대표적인 상징 조작이 그의 출생에 관한 부분.북한은 김정일이 민족의 영지인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 밀영부근 산봉우리를「정일봉」이라고 부르고 있다.
북한 언론은 정일봉에 자주 「신비한 번개」「쌍무지개」가 나타났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를 동원하면서 그를 신비스런 인물로 부각시킨다(중·고교 학적부등 관계 기록을 종합해 보면 그의 출생지는 소련의 하바로프스크라는게 정설이다).또 김정일의 노래·찬양집등을 제작해「혁명적이면서 인자한 인품의 소유자」로 포장해 왔다. 하지만 북한을 방문했던 외교관·학자나 망명자들의 증언에 의해 그의 성장과정과 성격이 단편적이나마 하나둘씩 벗겨지고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성적도 보통이었고 특별히 천재성이나 특이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았다.
남다른 점이 있다면 예술에 관심이 있어 영화·연극·무용등을 자주 관람하며 폭넓은 교우 관계를 유지했고 계급투쟁론을 줄줄 욀 정도로 투철한 사상 무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
김일성대학에 입학하면서 그는 정치·경제·철학·어학등 각 분야에 개인교사를 두어 특별 교육을 받기 시작한다.
○가족 갈등으로 성격변화
이 시기에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과 갈등을 빚으면서 반항적이고 즉흥적인 성격이 형성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학년이 되면서 아버지를 쫓아다니기 시작,「현장지도」를 해가며 정치가로서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대학 졸업이후 당 조직지도부·선동선전부 지도원으로 본격적인 대외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의 성향이 외부로 조금씩 드러났다.「지도자의 길」을 들어서면서 나타난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예술에 탁월하고 ▲매사에 정력적이고 대담하며 ▲김주석에 비해 국제 변화에 민첩하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63년9월 북한의 첫 TV 실험중계가 그의 지도하에 이루어졌고 70년대초에는『피바다』『꽃파는 처녀』등 중요한 가극이나 영화에도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67년 당시 자신의 직속 상관인 선동선전부장 김도만을 이념적으로「반당분자」로 몰아 숙청하고 74년에는 평양시당 전원회의에서 계모인 김성애를 축출하는등 투쟁적 정치가로서의 담대한 성격을 보여주었다.그의 집에는 남한의 KBS·M BC를 포함해 8개국의 방송 수신기를 설치해 놓았으며 집중적으로 외국서적·영화비디오등을 수집하는등「국제감각에 능한 실용주의자」로서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그가 ▲사치성이 강하고 ▲천성이 난폭하고 충동적이며 ▲실수를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많다.
91년 북한외교관으로 처음 망명한 고영환씨에 따르면 「주량이 도량」이라고 말할 정도로 술을 좋아하는 그는 측근들과 자주 호화 술자리를 벌여 주위의 눈총을 사고 있다는 것.고씨에 따르면 술자리는 보통 16∼17세 미모의 처녀들로 구성된 「기쁨조」가 동석해 난잡한 파티를 하며 술좌석 도중 측근들에게 달러 뭉치를 쟁반에 담아 하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또 서울에 63빌딩이 들어선 이후 『미제국주의의 하수인에게 질 수 있느냐』며 1백5층짜리 류경호텔을 지으라고 지시,통이 크다는 평가와 함께 광적인 과시욕을 보여주었다.
○외국오디오·영화 수집광
그와 자주 접한 중국쪽 외교관들은 『그는 한번 이야기하면 남의 말을 듣지않고 2∼3시간 계속하지만 말에 별로 조리가 없다』며 『아버지보다 전반적으로 노련미가 떨어진다』고 평가하고 있다.
인간성에 대해서도 화가 나면 총을 꺼내 상대방에게 겨눌 정도로 성급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KAL기 폭파사건의 최종지령자가 김정일이었다는 점은 그의 모험성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신상옥·최은희부부는 86년 미국에서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머리가 좋으나 인간성이 떨어져 어떤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라고 평한 바 있다.
김정일의 성격·태도가 앞으로 남북관계나 북한의 장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주목해볼 일이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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