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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신자유주의는 부자 나라를 위한 경제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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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부키, 383쪽
1만4000원

『쾌도난마 한국경제』로 널리 알려진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다섯번 째 책이다. 장 교수가 그동안 펼쳐왔던 주장을 일반 대중용으로 풀어썼다. 그의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와 『국가의 역할』을 압축한 뒤 역사적 사실을 덧붙인 형식인데 술술 읽힌다.

논지는 분명하다. 현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부자 나라들만을 위한 경제 이론이라는 비판이다. 신자유주의가 시키는 대로 했다간 개발도상국은 영원히 개도국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 경제도 장기적으로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각자의 처지’를 다 고려하는 경제이론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노엄 촘스키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를 ‘현실로서의 경제학’이라고 명명했다.

장 교수는 이런 논리 아래 주류 경제학의 통념을 산산조각 내고 있다. 대부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제 이론을 뒤집는다. 당연히 신자유주의가 공격의 주된 대상이다.

그는 부자 나라들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고 도발한다. 노상 강도에게 약탈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성경 속의 ‘좋은 사마리아’인과 달리 부자 나라는 개발도상국을 약탈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이다. 또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국제무역기구(WTO)가 부자 나라의 앞잡이인 ‘사악한 삼총사’라고 욕한다. 자유 무역, 자본시장 개방, 지적재산권 보호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논리가 나쁜 사마리아인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한다.

 이를테면 자유 무역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잘 살게 된다는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은 ‘현상을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옳은 주장이라는 것이다. 개도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무역 장벽을 통해 신(新)산업을 육성해야 하는데 자유 무역을 하다 보면 개도국은 계속 원료밖에 수출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영국·미국 등도 경제개발 초기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장벽을 높이 쌓아 선진국이 되었는데 이제 와선 개도국의 경제 발전을 막기 위해 자유 무역을 강요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대로 1960년대부터 자유 무역을 했다면 삼성은 아직도 설탕과 모직을 만드는 상태에 머물러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비교우위론은 개도국에게 독배(毒杯)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개도국이 선진국 눈치를 보지 않고 ‘제조업 육성’에 나설 수 있을까. 장 교수는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싸우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개도국이 이런 과정을 거쳐 성장하면 선진국에겐 물건을 팔 수 있는 시장이 더 커지므로 중장기적으론 서로 더 큰 이익이라고 설득한다. 사마리아인이 원래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영어로 먼저 출간된 이 책에 대한 선진국 독자들이나 주류 경제학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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