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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소장출신들 후계 “지렛대”/김정일 협조자와 경쟁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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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당·정무원 핵심인물들 거의가 최측근/군소장층 이하일·김광진 등 관계 서먹
김정일의 대권 가도는 순탄할 것인가.그를 둘러싸고 있는 북한권부 인물 가운데 협력자는 누구이며,경쟁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지금까지 북한의 영도핵심·지도핵심등 고위간부들은 김정일 후계체제를 떠받치는 핵심세력이었다.
김정일은 70년대 중반이래 「간부배합」정책을 중시해 노년·중년·청년의 배합,빨치산출신·유자녀출신·비유자녀출신의 배합등을 기본틀로 삼아왔다.
당·정무원 부장급이상 핵심인물들의 90%는 김정일후계체제 아래서 승진해온 사람들이고 김일성시대의 인물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김정일이 당간부사업을 장악한 이래 영도핵심·지도핵심에 자기 사람들을 배치하기 시작해 78년께 이르면 당중앙위 부장은 말할 것도 없고 당비서·정치국 후보위원까지 독자적으로 추천권을 행사했다.그가 아버지와 상의하는 간부대상은 정치국원 정도였다.
북한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영도핵심」은 당정치국 위원·후보위원을 비롯,당비서·정무원 상무위원(총리·부총리)들을 포함한다.
영도핵심 중에서도 「핵심」은 정치국 상무위원들이다.상무위원은 김일성·김정일·오진우 3명에 불과하다.그러나 전 북한고위관리에 따르면 이것은 직책상 그런 것이고 실제론 상무위원회 회의에 총리(강성산)·부주석(이종옥·박성철)도 참가한다.
최종 정책결정권자는 이들 6명인 셈이다.
상무위원회 다음으로는 영도핵심 모두가 참가하는 정치국회의가 중요하다.이 회의에선 대개 국가사업·당사업 전반과 경제현안등이 논의되며 영도핵심이라면 누구나 참석한다.다만 군사·대외·대남문제를 논의할 때만은 참석범위를 정치국위원으로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북한에서 당쪽이 군을 통제하는게 분명하지만 한편에선 군 또는군출신이 김정일 후계체제의 중추핵심을 이룬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야할 대목이다.
오진우(인민무력부장·국방위원회 부위원장·원수),최광(정치국 위원·총참모장·국방위원회 부위원장·차수),전문섭(국가검열위원장),백학림(당중앙군사위원·사회안전부장·차수),이을설(당중앙군사위원·국방위원·차수) 등이 대표주자들이다.
또 김철만(정치국 후보위원·국방위원),이두익(당중앙군사위원·차수),김두남(당중앙군사위원·대장),조명록(당중앙군사위원·공군사령관·대장),이하일(당중앙군사위원·군사부장·국방위원·대장),김익현(당중앙군사위원·대장),김강환(전군사부장·중장)등도 군계통 중추핵심에 포함시킬수 있다.
이들중 오진우·최광·김철만 3명만 정치국 성원이고 나머지는 공식적인 영도핵심에서 빠져있다.그러나 이들은 사실상 영도핵심들이라는게 전 북한고위관리의 설명이다.
6차당대회때 정치국원이었다가 80년대 중반이래 정치국에서 빠진 군고위인사들,즉 전문섭·이을설등 빨치산 소장층 출신이야말로 「드러나지 않은」권력중추로 이들이 바로 김정일의 강력한 후견자들이다.
영도핵심의 아랫단계인「지도핵심」을 보아도 숫자면에서 군대쪽이 절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북한이 「병영국가」라는 진단이 그런 점에서 무리는 아니다.『사단장급(소장)이상의 5백50여명이 모두 지도핵심에 포함된다』는 전 북한고위관리의 설명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북한의 핵심요직이 혁명2세대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덧붙여 김일성·김정일의 친인척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최고인민회의의장 양형섭의 부인 김신숙(김일성의 사촌동생·86년 사망)이 근로단체출판사 사장에서 민속박물관 관장으로,전 조국평화통일위원장 허담(91년 사망)의 부인 김정숙(김일성의 사촌동생)이 직총 부위원장에서 출판사 주필로 각각 자리를 옮기도록 한 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김정일이 자신의 친인척들을 핵심요직에 속속 기용하는 것이 드러난다.「후계체제의 안전판으로 믿을건 친인척밖에 없다」는 인식을 엿볼수 있다.
김정일이 핵심요직에 기용한 친인척에는 자신의 직계친척과 다소먼 인척들이 포함된다.
직계 친척으로 중용된 대표적인 예는 여동생 부부인 김경희(당경공업부장)·장성택(당청소년사업부장)이다.흔히 「곁가지」로 불리는 이복동생 김평일(핀란드대사)은 해외에 나가 있지만 다른 친인척들은 국내요직에 포진하고 있다.총리 강성산은 김일성의 이종사촌(김일성 어머니 강반석의 언니 아들)이고 부총리 김창주와 당중앙위 부장 김봉주는 김일성의 사촌형제들(삼촌 김형녹의 아들)이다.부총리·국가계획위원장 김달현과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우는 김일성의 조카뻘이다.당비서 황장엽은 김일성 고모의 사위다.
평양시 당책임비서 강현수,정치국 후보위원 강희원,당역사연구소장 강석숭,당통일전선부장 강주일등은 김일성의 외척들(강반석의 인척)이다.
실제로 친인척은 아니지만 그렇게 취급되는 그룹도 있다.김일성밑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죽었다는 오중흡의 아들 오극렬(당부장),김혁의 아들 김환(부총리),6·25때 전사한 군총참모장 강건의 아들 강창주(군단장),1930년대 북만주에서 김일성의 생명을 구했다는 화전민의 아들 연형묵(자강도당 책임비서),항일빨치산 출신 전창철(직총위원장·조국전선의장 역임,82년사망)의사촌 전하철(당부장)과 6촌동생 전금철(조평통 부위원장)등이 그들이다.
이같은 권부 인물 가운데 앞으로 김정일의 권력 정착 과정에서 그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부류는 크게 군부의 소장층·친척·경제 테크노크라트등 3개 그룹으로 나눌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비교적 소장층으로 군부 핵심그룹을 이루고 있는 국방위원회 위원 이하일,인민무력부 부부장 김광진(차수),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부국장 이봉원대장,총참모부 부참모장 전재선(대장)등의 행보가 주목된다.이들이 김정일에 반기를 들면 가장 강력한 저항세력이 될 것으로 보이며,이 경우 북한 정국은 예측할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친척의 경우 삼촌인 김영주부주석,계모 김성애 중앙여맹위원장,이복동생 김평일 핀란드대사등 과거 김정일과 권력 암투를 벌였던 인물들이 어떻게 나올지 관심거리다.
이들중 김영주는 지난해 복권했고 김성애 역시 지난해부터 내부적으로 활동을 재개한뒤 지난달 카터―김일성 회견에 등장해 관심을 끌었다.김평일은 주로 해외로 돌았으나 군부내에 일부 지지세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관료 그룹에서는 강성산총리겸 당정치국원등 경제 테크노크라트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연합할 경우 상당한 세력이 될수 있으며,이들이 군부와 결합하면 집단지도체제도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김정일이 20여년간 다져온 후계체제에 도전한다는 것은 큰 모험일 것이며,이 경우 북한 정국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정치2부>
◎후계대비 군행사 참여 활발/김정일의 최근 행적을 보면…/공식석상보다 편지 등으로 조용히 기반다져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두드러지는 것은 없다.
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은 찾아지지 않는다.그의 권력 승계 가능성을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칠만한 특별한 행적은 없었다는 얘기다.
올들어 김정일은 공식적인 정치행사에 참가하고,외국 인사와 접촉하는등 평소와 다름 없는 활동을 보여 왔다.올 정월초하루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에 참석했고,2월말과 5월초에는 허종만(조총련책임부의장),이진규(동 제1부의장)등 조총련 관계자들과 만났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행적에서 굳이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의 경우 노동신문에 대한 현지지도(93년8월)가 한 차례 있었을 뿐이고,올들어서는 아직 한번도 없었다.
반면 군후방 일꾼대회,군창건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등에 참석하고 전승기념퍼레이드,군협주단 공연을 관람하는등 군관련행사에는 매우 활발히 참여했다.그러나 이것은 지난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된데 이어 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데 따른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다.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도 무관치 않은 것은 물론이다.
지난달 카터전미국대통령 방북때 김정일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것은 그동안의 행적에 비쳐 자연스런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김일성이 나설 자리에 대신 나서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 일종의 관례로 유지돼 왔다.이는 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밀어 공연히 반감을 자극하기 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세력을 구축해 권력 승계에 대비한다는 계산과도 통한다는 분석이다.
그대신 그는 친서나 감사의 편지등을 통해 공장·기업·농장·군부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흔히 이용해 왔다.이와 함께 각계각층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선물을 보내는 방법도 그가 애용해온 수법이다.
이렇게 볼 때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는 것은 무의미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김정일의 권력기반은 기본적으로 노동당조직 지도부와 당비서국이다.따라서 공개활동보다 당내부활동을 통해 지도력을 행사 하는 것이 그로서는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배명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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