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신중해야 할 대법관 자격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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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87년 美 레이건대통령이 보수성향의 로버트 보크 前법무차관을연방대법관에 지명하자 美國 전역은 보크씨 임명에 대한 찬.반논쟁으로 후끈 달아 올랐다.
노조와 여성.흑인 단체등 진보세력이『보크씨가 인공유산을 허용한 판례를 위헌이라고 공개 비난한 적이 있다』며 낙태및 사형제도.종교교육.소수민족문제등에 대한 그의 보수적 성향을 공격하고나선 것이다.
이들은 보크씨가 예일大교수 재직기간중 남긴 각종 논문.기고문들의 성향을 면밀히 분석해 그를 극단적인「보수주의자」로 밀어 붙임으로써 결국 상원에서 인준거부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단 한명의 대법관 지명을 둘러싸고 美國 전체가 이렇게 시끄러웠던 것은 美연방대법관이 종신제인데다 새로운 판례나 해석으로 기존 법을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글러스 긴즈버그판사는 코넬大 재학당시 마리화나를 피운 경력으로 인해 대법관 임명이 좌절됐으며 토머스 클래런스 現대법관 역시 애니타 힐 교수와의「성희롱 파문」에 휘말려 어렵게상원인준을 통과했을 정도로 대법관에게 요구되는 기준은 까다롭다. 美國의 경우와 직접 비교를 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지만 우리의 대법관 임명제청과정은 너무「전근대적」인 요소가 많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대법관감을 거론할 때 과거 판결 내용은 어떠했고 그의 판사로서의 자질과 가치관.도덕성등 본질적인 기준보다는 고시기수.출신학교.출신지역등 부수적인 문제들이 먼저 입에오르내리는 것이 현실이다.
신임 대법관 자격을 문제삼고 있는 民主黨과 民辯 역시 임명동의 대상자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평가 자료를 축적해 놓았는지는 의문이다.기대를 모았던 7일의 공청회도 在朝및 여당의 무관심과 주최측의 준비 미흡으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끝났다.
대부분의 법원 관계자들은『당사자가 승복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객관적인 접근이 결여돼 있는 상태에서 특정인을 찍어 몰아세우는것은 법원의 권위를 실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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