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과 한미조율(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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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때 보다도 낙관적인 분위기속에 북한과 미국의 3단계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있다.조건부이긴 하지만 핵개발을 동결할 수 있다는 북한측의 의사가 이번 경우처럼 적극적이고 명시적인 경우도 없었고,이에 대응한 미국의 관계개선 방안 역시 상당한 구체성을 띠고 있다.
이처럼 긍정적인 기대를 가지면서도 불안한 그늘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우선 대화를 통한 해결노력의 마지막 기회라는 데서 성과가 없으면 곧바로 제재에 따른 긴장국면을 빚게 될 것이다.또 북한과 미국이 합의에 이른다고 해서과연 우리도 꼭 만족할만한 내용이 될지도 문제다.
회담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투명성을 확보하고,북한으로 하여금 핵비확산조약(NPT)체제로 완전히 복귀토록 하는데 있다.특히 핵투명성 확보 노력은 지금까지의 북한 핵무기개발 과정을 추적하고,현재는 물론 앞으로의 핵개발 계획을 완전히 동결시키자는데 있다.한국과 미국이 여태까지 함께 관철되도록 노력해온 원칙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정부가 이러한 원칙에 어느정도 신축성을 두고 해결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우선 현 단계에서 북한의 핵개발 계획을 동결시키는데 주력하고 과거 핵문제는 다음 단계로 넘길 의사마저 내비쳐지고 있다. 물론 미국정부도 공식적으로는 과거·현재·미래의 핵투명성 규명원칙을 포기한 일은 없다는 입장이긴 하다.그러나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한두개의 핵폭탄을 갖고 있느냐,없느냐의 문제보다 앞으로의 핵무기 다량 개발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클린턴 미대통령의 말 같은데서 그 원칙이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갖게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혹시 그러한 수준에서의 타결이 NPT체제 유지를 위한 세계적인 전략에 맞을는지는 모른다.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한개라도 가졌다고 가정할 경우 우리에게는 안보상 심각한 문제가 된다.직접적인 대남 위협수단이 될 뿐더러 일본등이 핵무장에 나설 명분까지 주어 우리의 안보상황이 불안정해질 것이 뻔하다.따라서 우리 정부와 미국정부간에 충분한 정책조율을 거쳐 그런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긴밀히 협의해야 할 일은 그뿐 아니다.북한측이 일괄타결 조건으로 내놓고 있는 문제들은 모두 한반도의 안정과 관련돼 있다.그런데 여러 문제에서 한미간에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경수노 지원문제가 그 두드러진 예라 할 수 있다.협상은 물론,건설까지 미국이 주도하겠다면서 막대한 비용만 우리측이 부담하도록 한다든가 하는 일방적인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협상은 미국이 하지만 우리의 기본적인 국익이 걸린 문제다.그런 면에서 미국은 고비 고비마다 우리정부와 충분히 협의해 가며 회담을 진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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