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현 “폼 잡지 않고 재밌게 만들되 ‘예술이네’하는 소리 들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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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씨의 노트엔 배우 스케줄·작품 시놉시스·극장 대관 일정 등 연극 기획자다운 내용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진=김성룡 기자]

2004년 서울 대학로는 생동감이 넘쳤다. ‘연극열전’이란 이름을 내걸고 1980년대부터 사랑 받아 온, ‘청춘예찬’ ‘관객모독’ ‘남자충동’ 등 명작들이 차례로 무대를 장식했다. 관객은 북적였고, 객석은 뜨거웠다. 마치 21세기 한국 연극의 르네상스가 새롭게 부활할 듯 보였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다. ‘연극열전’ 시리즈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한 채 단순한 이벤트로, 과거의 전설로만 사라져갔다. 그런데 최근 ‘연극열전’이 다시 꿈틀거린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중심엔 배우 조재현(42)씨가 있었다. 단순한 얼굴마담이 아닌, 작품 선정·배우 섭외 등 굵직한 일마다 온 몸 다 던져 분투중이었다. 명함도 팠다. ‘2008 연극열전 프로그래머’가 그의 현재 직함이다.

-왜 연극열전인가.

 “2004년 연극열전 시리즈중 한 작품인 ‘에쿠우스’에 출연했다. 연극의 흥행성을 확인한 무대였다. 그리고 올 초 ‘경숙이, 경숙아버지’에 출연하면서 다시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동숭 씨어터컴퍼니 홍기유 대표에게 ‘연극열전’을 부활시키자고 제안했다. 단 제작비가 많이 드는 대형 작품보단 내실있는 소극장 위주의 작품만으론 라인업을 꾸리자고 했다. 신작 6편, 재공연 6편 등 모두 12편이 올 연말부터 내년 1년간 3개 공연장에서 관객을 찾아간다. 첫 작품은 12월7일 장진 감독 연출의 ‘서툰사람들’이다.”

-‘2008 연극열전’의 방향성은.

“무겁고 심오하며 형이상학적인 연극을 거부한다. 창작자 위주의 ‘자기 만족적인 연극’이 돼선 안된다. 그렇다고 최근 대학로에서 성행하고 있는 ‘개그 콘서트’류의 코믹물도 해답이 아니다. 그 중간선, 즉 재미있고 관객이 좋아하면서도 어딘가 연극적 형식미를 갖춘 작품이어야 한다. 관객에게 ‘예술할테니 보러 와라’고 폼 잡기 보다, 부담 없이 보러 왔더니 ‘예술이네’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스타 연출가와 배우가 눈에 띤다.

“연극을 외면했던 대중을 향한 일종의 긴급 처방인 셈이다. 내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다. 연극은 영화·TV드라마에 비해 개런티도, 수요층도 적은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돈이나 관객 이상의 자기 만족감을 심어줘야 스타가 움직인다. 다행히 좋은 작품, 좋은 역할이 있어 많이들 동참 의사를 보였다.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이 ‘늘근 도둑 이야기’로 처음 연극 연출을 하게 된다. 해외 명작인 ‘라이프 인 더 씨어터’엔 이순재 선생님과 지진희씨, 일본 작품인 ‘웃음의 대학’엔 문성근 선배와 황정민씨가 출연하고, 또한 ‘잘 자요 엄마’엔 나문희 선생님이 함께 하신다. 캐스팅의 90% 가량이 확정됐다.”

-세대 교체도 염두에 둔 것 같다.

“연극계는 40대 중반임에도 ‘차세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들은 차세대가 아닌 현재 시대를 이끌며, 또한 그 만큼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박근형·김광보 연출가는 물론 황재헌·이해제·김낙형 연출가들이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자기 세계를 보여주리라 기대한다.”

-다른 활동은 안 할 생각인가.

“연극 기획자로서의 내 역할은 첫 작품이 올라갈 때까지다. 그 이후엔 다시 배우로 돌아간다. 그러나 나에겐 연극은 심장처럼 모든 것의 중심이다. 연극열전이 4년마다 열리게끔 체계화하고 싶다. 또한 독특한 색깔의 소극장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최민우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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