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자금 땅으로 몰린다] 정부선 "투기 열풍 없다"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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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투기가 확산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아직도 "개발이 예정된 일부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개발이 예정된 곳의 땅값이 올라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도 "신도시 예정지와 신행정수도 후보지, 고속철 역세권 등 일부 지역에서 땅값이 소폭 상승하고 있지만 아직은 전국적 투기 열풍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연간 전국 평균 토지가격 상승률(잠정)이 3% 이내여서 평균 물가상승률(3%선)보다 낮다는 점을 근거로 댄다.

일부 지역의 땅값이 몇 배가 올랐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김헌동 국책사업감시단장은 "투기대책은 수도권과 충청권 등 수요가 많아 투기조짐이 있는 곳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건국대 조주현 교수도 "주택거래 억제 이후 갈 곳을 잃은 부동자금과 총선 변수로 인해 올해 토지시장은 불안요인이 많은 만큼 정부의 선제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정부는 전국적인 토지투기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 투기우려가 현실화하거나 주변으로 확산할 조짐이 있는 지역을 찍어서 대증요법만 쓰겠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10.29 부동산 대책을 마련할 때 집값 대책뿐 아니라 투기혐의자 금융계좌 일괄조사와 종합부동산세 신설 등 땅투기에도 적용되는 강력한 대책을 도입했다"며 "조만간 부동산대책반 회의가 열리면 부분적인 대책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토지 투기지역을 확대 지정하고 토지거래 허가지역을 늘리거나 최소 허가면적을 줄여 규제의 고삐를 죄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경실련 김헌동 단장은 "주택투기의 피해는 일반 국민이 곧바로 체감하지만 토지투기에 따른 주택가격과 공장용지 가격의 상승 등 부작용은 뒤늦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주택 투기지역의 경우 지난해 집값 안정을 위해 전국 53곳에 대해 지정했지만 토지 투기지역은 단 4곳(대전시 서구.유성구, 천안시.김포시)만 지정됐다.

건교부는 4분기의 지가변동률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성남시 판교 및 분당.수정구.중원구, 충남 아산, 연기군, 공주시 등 6곳 외에 평택.계룡시.수원 영통지구 등이 투기지역에 새로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건교부 관계자는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매기는 투기지역이 확대 지정되면 투기 열풍이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부분적인 대책만으로 땅투기를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건국대 조주현 교수는 "개발지역 주변부로 투기가 확산하지 않도록 땅값 상승에 따른 이익환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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