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그림으로 환자와 희망 나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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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세계 179개국 800여 곳의 병원을 돌며 3만 점 이상의 그림을 기증한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병원의 벽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수놓은 미국 병원예술재단 존 파이트(67·사진) 이사장이다. 그는 지난 23년 동안 환자들에게 그림으로 희망을 전하며 투병 의지를 북돋워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20만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그를 돕는다. 그는 한국화이자제약의 후원으로 올해로 6년째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그림은 제게 운명이었습니다. 그림이 주는 행복을 누리던 그때, 나만을 위한 그림이 아닌 다른 사람과 나누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파이트 이사장은 미술 전공자가 아니다. 20년간 광고 마케팅업계에 종사하던 그가 ‘그림 희망 메신저’가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 회의가 들던 어느 날 아내가 사다 놓은 캔버스를 발견하고 정신 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이 주는 기쁨과 마음의 치유를 경험한 그는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화가로 활동했다.

“몽마르트 언덕을 넘나들던 당시 미완성 그림을 병원에 가져가서 그릴 일이 있었는데, 이를 보고 있던 한 소녀 환자가 그림에서 희망을 찾는 모습을 보고 인생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1984년 그는 비영리 재단인 병원예술재단을 세우고, 전 세계 병원을 돌면서 그림을 그려 주기 시작했다. 그림은 꽃·나무·새·동물 등 자연 친화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초안을 담은 캔버스를 환자 개개인이 완성한 뒤 이를 모아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아름다운 색채와 독창적인 디자인을 보면서 아픈 이들에게 행복한 느낌을 전달해 준다는 게 파이트 이사장의 설명이다.

이번 방한기간 동안 파이트 이사장은 12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대구 동산의료원, 부산 백병원, 인천 길병원을 이틀씩 찾았다.

“한국은 우리에게 무척 특별한 곳입니다. 소아환자들이 꼼꼼하게 색칠을 해 나갈 때만큼은 세계 어느 어린이보다 열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인 저희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죠.”

그는 사고의 충격으로 3주 동안 말을 안 하는 아이가 특히 생각난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 그림을 권유했더니, 의료진들도 감동할 만큼의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었단다. 그 아이가 붓을 들고 사람들에게 그림 그리는 방법을 설명하기에 이른 것이다. 파이트 이사장은 “어른 환자들의 그림 그리기 또한 육체적인 고통만큼 상처 받은 마음에 기쁨과 정서적 안정감을 줘 성취감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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