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민락』/김정길 서울대교수·작곡(국악순례:8)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백성과 함께하는 화악의 깊은 뜻이…
94년은 국악의 해로 정해져 어느 해보다 우리음악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이는 국악이 우리들의 음악이면서도 생활과는 아주 먼 곳에 있음을 입증하는 서글픈 일로 뒷맛이 씁쓸하다.
음악에 관한한 우리는 모국어보다 외국어에 친숙하도록 길들여져왔고 또 학습을 받아왔다.그러기에 국악의 해가 있게 되었나 보다.음악을 전공하는 한 사람으로 부끄럽고 송구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내가 소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쉽게 경험하고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가야금이나 거문고·피리가 아니고 피아노라는 매체였다.내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음악을 익히고 경험하고 자라난 것이다.
어릴 때 기억인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기민요나 판소리를 무심코 듣고 있노라면 주위에서 다이얼을 황급히 돌려버리는 등 우리와는 무관한 것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이렇게 우리들 세대는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음악을 쉽게 접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전통음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성경린선생 밑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6·25 당시 진해 해군 군악학교에서였다.
그런 귀중한 기회가 주어진 덕분에 우리나라 음악에 심취할 수 있었는데 특별히 작곡을 공부하는 한국사람으로서 작품의 개별성과 창의성 측면에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역동적이고 미묘한 장단의 사물음악,여러 악기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음향의 조화를 뿜어내는 산조음악,그리고 극적이면서도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미어지도록 한을 삭이게 하고 때로 익살스런 흥까지 표현해 내는 판소리등 내게는 모두가 귀중한 것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중에서도 특히 나는 『여민락』에서 그 어느 곡보다 주체하지 못할만큼 진한 감동을 받고 있다.나에게 우리나라 음악의 진수를 설명하라면 『여민락』을 우선 들려주고 싶다.
그만큼 『여민락』은 장중하며 바르고,밝고 시원한가 하면 태평스러워 진정 성군이 어린 백성과 더불어 화락하는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는 곡이다.이 곡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넓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국립국악원이 연주하고 성경린선생이 해설을 붙인 카세트테이프(성음 제작)와 LP판(지구레코드)이 있으며 CD(서울음반)는 8월초 출반될 예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