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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정부와 싸움 이제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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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불은 꺼졌지만 저항은 이제 막 시작됐다."

'오보 스캔들'의 주역으로 지목돼 창사 82년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영국 BBC방송의 정부와 허튼 조사위원회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과장했다는 BBC 보도'의 진위를 조사했던 브라이언 허튼 대법관이 지난달 28일 종합 보고서를 통해 이 기사를 오보로 규정함에 따라 BBC의 개빈 데이비스 이사장과 그레그 다이크 사장 및 이 기사를 보도한 앤드루 길리건 기자는 사표를 냈다.

◇반발=이런 사태에 대해 BBC 직원들은 반발하고 있다. BBC 방송의 앵커와 기자 등 4천명은 다이크 사장을 지지하는 광고를 데일리 텔레그래프지에 게재하는 등 일전도 불사한다는 자세다. 또 법적 대응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이크 전 사장도 "토니 블레어 정부는 이라크 전쟁 보도와 관련해 BBC를 체계적으로 괴롭히고 위협해왔다"며 "지난해 3월 21일 이라크전 개전 때 정부가 BBC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내용으로 총리에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그는 "앨래스테어 캠벨 전 총리 공보수석이 이라크전을 보도하던 BBC의 라쥐 오마르 기자를 바그다드로부터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으며 또 리처드 샘브룩 뉴스팀장에게 BBC의 이라크전 보도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폭로했다. 캠벨은 자신의 시각과 다르게 보도하는 기자들을 괴롭혀왔으며 이런 행위는 명백한 언론탄압이라고 다이크는 주장했다.

다이크는 "블레어가 BBC를 공격하는 사적 편지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BBC 측은 허튼보고서에 대해서도 화살을 겨눴다. 익명의 취재원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 보도한 것은 잘못이라는 허튼의 주장은 내부 고발자를 통한 취재를 사실상 제한하며 따라서 언론자유를 침해할 것이라고 회사 측은 경고하고 있다.

다른 영국 언론사도 동조하고 있다. 데일리 메일.데일리 익스프레스나 가디언지 등도 허튼보고서가 이번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국 국민도 정부나 허튼 대법관보다는 BBC를 더 신뢰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와 블레어 총리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내부 반성=한편 내부적으론 그 같은 오보가 나온 과정에 대한 반성도 병행되고 있다. 허튼보고서는 "BBC의 보도는 취재원이었던 데이비드 켈리 박사의 증언에 길리건 기자가 자신의 추측을 보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길리건 기자는 이 건을 취재하면서 녹음과 메모를 안 했으며 편성책임자도 원고 확인 없이 생방송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BBC도 취재와 보도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BBC가 허튼보고서를 다 수긍하지 않는 것은 조사의 공정성이 의심되고 내용이 부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에 대해 비판적 논조를 견지해 왔던 BBC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블레어 정권 사이의 앙금이 가시지 않은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한경환 기자

▶2003년

■5월 29일 BBC, 이라크 WMD 위협 과장 의혹 보도

■7월 18일 취재원 켈리 박사 자살

■8월 28일 블레어 총리, 청문회 출석 증언

▶2004년

■1월 28일 허튼조사위원회, 켈리 사건 조사 발표, 블레어, BBC에 사과 촉구

■1월 29일 다이크와 데이비스 이사장 사임

■1월 30일 길리건 기자 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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