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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史 센터'냐 '동북아史 센터'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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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구려사 연구 센터'냐 '동북아 역사 센터'냐.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해 설립될 연구 센터(재단)의 명칭과 성격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는 지난달 14일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고구려사 연구센터'(가칭)에 연간 1백억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었다. 당초 거론된 연구센터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산하기관안(案)은 "정부산하 연구기관이 주도해선 안된다"는 학계.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문제는 연구센터의 성격을 규정하는 명칭 문제에서 불거졌다.

'한국고대사학회'(회장 이문기)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공동대표 최광식.한규철)가 지난달 30일 서울 대우재단빌딩에서 개최한 '고구려사 왜곡 대응방안' 토론회에서 고대사 관련 학자들은 '고구려사 연구 센터'로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최광식(고려대.고대사)교수는 "중국의 역사 왜곡에서 고구려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할 뿐더러, 우리 입장에서 보아도 고구려란 말을 빼면 연구 센터를 유지해 갈 추진력을 계속 얻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최교수는 "'고구려'라는 명칭이 고구려 역사만을 가리키기보다는 동북아 역사 전반을 아우르는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토론에 참석한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공동대표 서중석.이남순.이수호)의 양미강 상임운영위원장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동아시아 문제를 함께 고민해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동북아 역사 센터'로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에 앞서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고구려역사지키기 범민족시민연대'(공동준비위원장 조성우.박원철.이장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대표 이종훈)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달 27일 "한.일, 한.중, 남북을 포괄하는 동북아 역사센터를 설립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연구센터는 동북아시아 전체를 염두에 두고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독립적 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중석(성균관대.한국현대사)교수를 비롯한 일부 근현대사 연구자들이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정부 측은 "명칭 문제는 센터 설립 추진위원회에 맡기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명칭 논쟁으로 시간만 끌다가는 중국 측의 역사왜곡 움직임에 대한 대응만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편 여호규(한국외국어대.고구려사)교수는 지난달 30일 토론회에서 "고구려사 연구 센터(재단)의 법적 위상은 학계의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개방형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고구려사 문제와 관련, 오는 4일에는 '(고구려사)연구재단 설립 추진위원회'가 발족될 예정이다. 추진위 발족에 이어 12일에는 공청회를 개최해 명칭에 대한 이견을 조율할 계획이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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