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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잔인한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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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0년대 후반 미국의 유례없는 호황은 흔히 '뉴 이코노미'로 표현된다. 정보.기술(IT) 혁명으로 기존 경제학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경제를 이뤘다는 뜻이다.

이는 원래 IT혁명 이전부터 거론된 것이다. 경제잡지 비즈니스 위크는 이미 81년 6월 1일호에서 이를 처음 다뤘다. 고유가.고금리.고물가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가 불황에 대한 내성을 키워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었다는 기사였다. 85년엔 '뉴 이코노미'특집도 게재했다. 이어 86년 US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와 포천이 각각 커버 스토리로 다뤘다. 모두 서비스 산업의 발전을 원동력으로 꼽았다.

주가급등에 취해버린 90년대 후반엔 새로운 '뉴 이코노미'가 제창됐다. 이번엔 IT에 의한 또 다른 산업혁명으로 포장됐다. '뉴 이코노미'의 영속을 확신하는 분위기도 나왔다. 하지만 IT 경기가 위축되면서 함께 시들해졌다.

그러다 미국 경제가 지난해 3분기 20년 만의 최고치인 8.2%의 성장을 기록하자 '뉴 이코노미'의 부활이 거론되고 있다. 생산성 향상→수익증가→투자확대→고용회복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기대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일자리가 확확 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경비절감에 신경쓰는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있다. 또 기술발달로 많은 노동력도 필요없게 됐다. 경기회복을 선언한 일본도 비슷한 현상을 겪고 있다. '고용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란 말은 이래서 나왔다.

한국 경제를 '뉴 이코노미'로 부를 수 있을지는 둘째 치고라도 고용능력은 자꾸 떨어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경제가 1% 성장할 때의 신규 취업자 수는 2001년 13만3천여명이었다. 이것이 지난해엔 3만6천여명으로 줄었다. 경기가 좋아져도 고용은 예전만 못하다는 뜻이다.

그럼 '고용없는 성장'이 새로운 경제의 본질인가. 물론 "아니다"라는 대답을 듣고 싶다. 경제가 잘 돌아가면 일자리도 저절로 늘어난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아무도 시원스러운 대답을 못하고 있다. 오히려 '고용 까먹는 성장(Jobloss Growth)'이라는 썰렁한 말이 나오는 판이다. 아무래도 '잔인한 성장'을 맞이할 각오를 단단히 해둬야겠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