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다양한 시나리오 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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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프랑스의 앙드레 말로가 中國방문을 앞둔 닉슨에게 한 조언은 다분히 철학적이었다.
이미 중국 지도층과 접촉을 갖고 있었던 말로는『나(毛澤東)는진정한 후계자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마오는 자기가 죽은 뒤에 美國이 核 폭탄 공격을 해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 으며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여섯개의 핵 폭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꿈을 키우고 있다.마오가 당신을 만나서 제일 놀랄 일은 당신이자기보다 젊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닉슨을 만난 마오는 노회한 혁명가답게 속 마음을 터놓지 않았다.현안인 臺灣문제를 거론하면서도『우리 두 사람의 오랜 친구인 장제스(蔣介石)』라는 우회적인 표현을 썼다.닉슨이 미리 공부해 간 각본에 따라 마오의 저작들과 詩가 세계의 흐름을 바꾸었다고 치켜세웠을 때도 마오는『내 저작은 모두가 하찮은 것들이오.
세계를 바꾸기는커녕 베이징 교외의 두 세곳에 영향을 주었다면다행이오』라고 능청을 떨었다.
그보다 훨씬 앞서 54년 韓國전쟁과 인도차이나 문제를 다루기위한 제네바 회담에 대표부를 설치할 때만 해도 미국과 중국은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했다.저우언라이(周恩來)는 덜레스에게 악수를 청했다가 거절당하기도 했고 덜레스를 보좌하 던 스미드 대표는 중국 대표와 악수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커피 잔을 항상오른 손에 들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중국 대표부는 華山大飯店이라는 호화판식당에서 연일 연회외교를 벌였다.희극 배우 찰리 채플린이 이 연회에서 처음으로 마오타이를 마신 뒤 장기인 병신 걸음을 자랑해서 당대의 거물급 외교관들을 웃긴 것도 이때였 다.
중국에 앉아서 닉슨을 맞이한 마오와 저우언라이는 기꺼이 이런화제들을 꺼내 손님의 환심을 사고 경계심을 풀게 했다.노련한 중국식 외교의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카터를 메신저로 해서 7월에 열리게 된 남북 頂上회담은 무조건이라는 점에서 劇的인 효과를 더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그 점에 회담의 성공을 보장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약간은 비밀스러운 구석을 감추기도 하고 실무진의 끈질긴 밀고 당기기 끝에 성사되면서 심지어는 회담 발표문까지 미리 합의해 두고 열리는 관례를 깼기 때문이다.
議題도 없고 더구나 상호주의 원칙을 무시한 채 열리는 平壤회담은 절박한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나 성급하게 마련된 무대다.
서로가 마음 속에 쌓아두었던 敵對感을 희석시키기에는 平壤이란 무대는 일방적이다.
통역이 필요없는 이 회담은 자칫 외교상의 까다로운 格式이나 멋,또는 여유와 韻致에서 오는 格調를 생각할 수 없는,서로의 인격을 건 지혜 겨루기가 되기 십상이다.적당히 상대를 치켜세우고 그 나라의 전통과 고전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하 는등의 외교辭令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회담을 깰 심산으로 주인인 金日成이 金泳三대통령의 오랜反독재투쟁에 경의를 표하면서『남반부 인민들의 영웅적인 反美투쟁을 성원하겠습니다』라는 투의 선동연설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平壤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통제된 凍土의 수도다.그 숨막히는 땅에서 金日成이 어떤 제스처로 손님을 대접할 것인지를 짐작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회담이 단순한 만남의 차원을 넘기위해서는 그 점에 대해 다양한 지혜를 빌리고 시나 리오를 꾸며볼 필요가 있다.불행히도 그럴만한 상대가 없다는 것이 남북문제의 결정적인 한계다.모두가 우리의 슬기와 지혜를 구경하고만 있을 뿐 빌려줄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지혜모아 대비할 때 金대통령 집권 2년째의 절반은 지났다.앞으로 반년은 정상회담과 관계되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랄것이다.그 다음의 연이은 선거는 정상회담의 결과를 심판한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의 다른 연장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金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남북문제로 채워질 것이다.보수나혁신 따위 이념의 차원에서 好.不好를 따질 수 없는 절박한 문제로 된 것이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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