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의현장>9.로렌스 버클리연구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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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버클리와 스탠퍼드가 없었더라면 실리콘밸리도 없었다.』오늘날세계의 전자.정보산업을 이끌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신화 창조는 바로 버클리와 스탠퍼드 출신의 우수한 두뇌에서 시작됐음을 사람들은 이렇게 빗대 표현하고 있다.미국 서북부 최고의 명문인 샌프란시스코 인근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와 스탠퍼드대학.이 두 대학은 치열한 자존심 경쟁에서 마치 우리나라의 연대.고대를방불케 한다.주립대학인 버클리는 미국 최고 수준의 국립연구소인로렌스버클리연구소(LBL)를 운영하 면서 사립인 스탠퍼드大의 국제연구소등과 치열한 연구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두 대학의 연구기관은 경쟁 일변도가 아닌 「협조적 경쟁」이라는 독특한 전통을 갖고 있다.잦은 연구.학문교류를 통해 서로의 질적 향상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 연.고대와 다르다면 다를까. LBL의 방사광가속기(ALS)센터와 스탠퍼드의 선형가속기센터(SLAC)가 최근 서로 주고받는 협조적 연구관계는 그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ALS와 SLAC의 건물 한쪽 옥상에는 조그마한 안테나가 설치돼 있다.크기로 보아 송.수신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듯한 이 안테나는 ALS와 SLAC의 과학기술자들이 정보를 주고 받는 핫라인이다.
ALS의 브라이언 킨케이드소장은『두 연구소간의 거리가 50마일(80㎞)정도에 불과하지만 연구정보를 자주 주고 받아야하기 때문에 원격 화상회의 장치를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1주일에 최소한 서너번씩 가동되는 이 장치는 91년 두 연구소 가속기분야에 대한 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설치한 것이다.그는 가속기와 같은 최첨단 연구분야일수록 과학자들간의 잦은 토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 두 연구센터는 토론이 어려운 미묘하고 까다로운 문제에 대해선 매주 1회의 정례회동을 통해 해결한다.
두 명문 연구소간의 이런 협력은 IBM과 도시바등 첨단 일류기업이 반도체 개발등에서 더욱 앞서가기 위해 손잡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타 경쟁 연구소에는 매우 위협적으로 비쳐지고 있다.일류 둘이 힘을 합쳐 이류를 도태시키는 무서운 생존 전략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킨케이드소장은 LBL의 이같은 연구전통이 모태격인 버클리대학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유명한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과거 버클리대학에 몸담고 있던 시절 스탠퍼드까지 배를 타고 오가며 물리학을 강의한 적도 있을 만큼 양교의 학문.연구교류는 역사가 깊다는 것이다.
LBL은 또 연구와 교육이 조화를 이룬 연구소로도 소문나 있다.한국인 학자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이 대학의 金聖浩박사(생화학)는『물리학과와 화학과의 경우 교수의 반 이상이 LBL의 연구원을 겸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LBL의 노벨상이 물리.화학에 집중돼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물리.화학서 “명성” 버클리는 또 LBL의 유능한 연구원들에게 수시로 강의를 맡겨 학생들에게 현장감 넘치는 교육을 시키고 있다.이 연구소 빔 물리학센터 부소장인 金光濟박사는 지난해부터 버클리대학 물리학과의 초빙강사로 「전자기학」을 강의하고 있다.이 과 목에 대한 그의 강의는 인기가 좋아 올해에도 계속 金박사에게 맡겨졌다.
로렌스박사는 가속기와 같은 큰 기계에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어연구하고 동시에 후학들을 가르치는 이른바 거대과학의 장점을 이미 60여년전 정확히 예측하고 LBL을 세웠다.그의 이런 예측과 바람은 버클리와 LBL의 세계적인 명성에서 확인할 수 있듯지금까지는 아주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고 있다.그러나 LBL의 장래가 아주 밝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국가의 연구비보조로 운영되는 미국의 다른 연구소들처럼 LBL도 지난 92년부터 제자리걸음 혹은 삭감되는 처지에 몰 리면서 애로를 겪고 있다.
이 연구소가 지난해 ALS에 이어 야심적으로 기획한「자유전자레이저」연구계획은 의회로부터 퇴짜를 맞았다.입자가속기보다 더 센 광원을 개발하려는 이 연구계획은 실용성이 없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예산줄어 어려움 LBL은 美정부와 의회의 이런 분위기를감지,연구인력의 신규채용을 중지하고 대신 아이디어를 많이 가진후박사과정생을 월 1천달러정도의 보조비를 주며 활용함으로써 예산을 절감하고 있다.또 연구의 돈줄을 개척하려 산업체와의 硏.
産협동 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버클리(美캘리포니아주)=金昶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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