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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女 장금,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 속 모습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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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반으로 접어든 대하 사극 '대장금'은 여전히 시청률 50%선을 유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장금(左)이 대비의 병 치료에 큰 공을 세우고, 이를 시기한 무리가 장금을 해치려는 계략을 꾸미면서 극적인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내의원 제조(궁중 의원에서 둘째로 높은 관원)가 문안하니 임금이 “내 증세는 여의(女醫)가 안다”고 말했다. 여의 장금의 말이 “지난 밤에 약을 달여 드렸더니 두번 드시고 삼경(자정 무렵)에 잠이 드셨습니다. 소변은 잠깐 보셨지만 대변은 보시지 못해 오늘 아침 처음으로 관장을 했습니다”고 했다. (중종 39년, 1544년 10월 26일)

시청률 50%대를 유지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MBC 대하 사극 '대장금'. 그동안 궁중에서 요리를 담당했던 수라간 궁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던 '대장금'은 최근 후편 격으로 온갖 역경을 뚫고 임금의 주치의 자리까지 오른 '의녀' 장금 이야기로 옮겨갔다.

사극은 늘 드라마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느냐는 논란을 달고 다닌다. '대장금'도 예외가 아니어서 시청자 게시판에는 역사 속 장금이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 묻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장금이란 이름은 '중종실록'에 모두 10번 등장한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기에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대장금'은 여느 사극보다 훨씬 더 작가의 상상력에 크게 기대고 있다. 작가는 실록에 임금이 "내 증세는 여의(女醫)가 안다"고 한 말은 그만큼 장금을 믿고 그녀에게 몸을 맡겼다는 뜻으로, 또 '여의'라는 다소 품격있는 말을 쓴 것은 장금이 보통의 '의녀'가 아니라 임금의 주치의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역사학자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서울대 규장각 김호 박사는 "문맥으로 봐서 장금이 임금의 주치의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단언했다.임금이 병들면 의녀들이 돌아가며 수발을 들게 된다. 그래서 실록에 기록된 내용은 그 무렵 마침 장금이 수발들 차례였던 것으로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임금이 자기 병세를 여의에게 물어보라 한 것도 장금을 신임해서가 아니라 임금으로서 구질구질한 증세를 직접 말하기가 뭣해 아랫사람에게 대답을 미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여의'라는 말에도 별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실록에는 '의녀'의 글자 순서를 바꿔 '여의'로 쓰는 경우가 간혹 있단다.

실록에는 중종10년(1515년)에 장금이 중전의 산후조리와 관련해 잘못을 저질렀다는 언급이 있다. 중종19년(1524년)에는 '의녀 대장금의 의술이 무리 중에 조금 나아 바야흐로 대궐에 출입하며 간병하니 한사람 몫의 봉급을 주라'는 구절이 나온다. 중종10년에 중전의 산후조리를 도울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 9년이나 지나서야 대궐을 출입할 수 있게 됐다는 건 아무래도 어색하다. 동명이인이 아닐까.

이에 대해 金박사는 "장금은 당시에 흔했던 이름이다. 실록에 나온 장금이 모두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대(大)자도 "이름이 같은 경우 헷갈리지 않기 위해 덩치가 큰 사람에게 흔히 붙이던 말"이라고 했다.우리 말로 '큰 장금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대장금'이라고 썼다는 것. 결국 드라마 '대장금'에서 실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건 중종조에 장금이란 이름을 가진 의녀가 있었다는 것뿐이다.

드라마 중에 연생이 승은(承恩)을 입어 숙원 이씨가 되는 것도 실록에 없는 내용이다. 실록에는 숙원 이씨가 정순.효정 옹주를 낳았다고만 기록돼 있고 개인적인 출신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의녀들의 생활에 대한 부분도 드라마에선 역사적인 고증보다 상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역사책에 나오는 의녀는 결코 고상한 여의사나 간호사가 아니었다. 의녀들은 관청의 노비였다. 그래서 관청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온갖 궂은 일을 다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따라서 장금이 대비에게 내기를 거는 드라마 장면은 상상이 너무 지나쳤다는 평가다. 천민인 의녀가 왕실의 가장 높은 어른인 대비와 맞상대를 하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 또 드라마에선 남자 의관이 중전이나 대비를 치료할 때 방에 들어가 발을 치고 의녀의 보고를 받지만 실제로는 남자 의관이 방 밖에서 대기했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대장금'이 작가의 머릿속 산물만은 아니다. 한의학.궁중 음식 등에 관해서는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해 많은 의견을 들었고, '궁중풍속연구'(궁녀들의 생활)나 '한국음식대관'(궁중 음식) 등 관련 서적도 참고했다고 한다.

'대장금'의 김영현 작가는 "궁녀나 의녀에 관한 자료가 워낙 적다 보니 장금이란 인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상상력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장금을 임금의 주치의로 해석하는 것이 틀렸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역사책이 아닌 만큼 그저 드라마로 봐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편 MBC는 당초 50회로 기획했던 '대장금'의 방영 횟수를 4~5회 정도 늘릴 생각이다. 수라간 궁녀 이야기에 시간을 너무 허비해 앞으로 남은 10회 정도에 의녀 이야기를 충분히 다 담아내기엔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MBC 관계자는 "가능하면 10회 정도 더 늘리고 싶지만 주인공인 이영애씨가 난색을 표해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러나 4~5회 정도 추가하는 것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얘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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