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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기자의 웰컴 투 풋 볼 <19> 침 뱉는 선수들이여, 리마를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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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반데를레이 리마(38·브라질)를 처음 만난 곳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다. 폐막식 중간에 남자 마라톤 시상식이 열렸고, 곧이어 지하 인터뷰룸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공식 회견이 끝난 뒤 리마에게 다가가 몇 마디를 물었다. 그는 “종말론자의 방해로 1위로 달리다 3위를 했지만 그것만 해도 조국에 영광이고, 내겐 큰 기쁨”이라며 동메달을 매만졌다. 준비해 간 태극 문양 부채를 쥐어주고 사진을 찍었다. 리마가 부채를 돌려주려 해서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그는 몇 차례나 “정말 내가 가져도 되느냐”고 확인한 뒤 “아브리가도(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그의 선한 눈빛을 잊을 수 없었다.

3년이 흘렀고, 지난 주말 서울에 온 리마를 다시 만났다. 그 부채는 집에 잘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브라질에서 대통령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여전히 겸손했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달리는 성자’였다.

 “나는 지독하게 가난했지만 마라톤을 통해 꿈을 찾았고, 인간답게 살 수 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도 스포츠를 통해 용서와 배려의 정신을 배웠으면 좋겠다.”

추석 연휴에 프로축구는 ‘더러운 사건’으로 얼룩졌다. 선수들은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 퇴장당하던 선수는 방송 카메라에 대고 욕을 했다. 북한 대표 출신의 준수한 청년은 하복부를 팔꿈치로 맞아 신장이 파열됐다.

잘 알고 지내던 선수들이라 안타까움은 더 컸다. 에두(수원)와 침을 교환한 임중용(인천)이나, 안영학(부산)에게 팔꿈치를 쓴 김영철(성남)은 모두 마음이 여리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다. 그런데 이들이 왜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돌변할까.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축구, 그 빛과 그림자』에서 ‘축구의 역사는 즐거움에서 의무로 변해 가는 서글픈 여행의 역사’라고 썼다. 스포츠가 프로화하고 돈이 경기장을 도배하면서 구단은 순위에 집착하고, 선수는 승리수당에 민감해졌다. 순수성을 의심받는 일부 심판은 ‘의도된 오심’으로 선수들의 내재된 폭력성에 불을 지른다.

리마는 “20년 넘게 마라톤을 했지만 출발선에 서면 ‘완주해야지’하는 생각뿐이다. 달릴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물론 고독한 레이스인 마라톤과 발을 써서 상대를 제압하는 축구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스포츠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 감동과 배려가 사라진 스포츠는 의미 없는 싸움질에 지나지 않는다.

K-리그 선수들이여,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왜 축구를 하는가’.

정영재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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