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잡은 전·노씨/5.6공결속 신호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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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립묘지앞서 악수,박정희묘 등 함께 참배/보수세 약진계기… 정치적 대사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6·25 44주년 아침 국립묘지 앞에서 악수를 했다.
5공청산의 와중에서 전씨의 백담사 귀양으로 깊어진 증오의 감정을 씻고 화해의 미소를 지었다.
이날 만남은 88년2월25일 전·노씨가 대통령직을 인수 인계한지 6년4개월만에 둘만으로는 첫번째.물론 93년2월 김영삼대통령 취임식장에서 악수를 나누었고,금년 1월 김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부른 자리에 함께 있었으나 두사람만의 만남은 전씨 퇴임이후 처음이다.
두사람의 만남은 5,6공 화해를 의미하는 행사로 앞으로 정치·사회쪽에 여러가지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두 사람의 만남에 대해『정치적 의미가 없다』(민정기비서관)고 하지만 이미 중요한 정치적 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하지 않은 5,6공인사들의 자연스런「단합의 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치·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을 끌고있다.
당장 북핵·한총련사태·철도파업 등에서 나타난 우리사회의 이념적 혼미속에 두 전직대통령이 보수의 목소리를 통치권자의 경험을 실어 보낼때 그 의미와 영향력은 나름대로 상당할 것이라고 5공출신 민자당의원은 전망했다.
무엇보다 8월 수사종결이 예상되는 검찰의 12·12사태수사에 대한「일종의 시위」로 비춰질수 있다.그동안 검찰에 불려갔던 인사들은『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한데 맞춰 12·12에 대해 유죄를 때리려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해왔다.
두 전직대통령의 만남에 대해 현정권은 일단 환영을 표시하고 있다.김영삼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두사람을 초대해 자문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국내정치 파급문제에 대해서는 태도를 유보하고 있다.
○…이날 국립묘지엔 오전10시55분쯤 전전대통령이 먼저 도착.뒤이어 노전대통령이 승용차에서 내리자 전씨가 먼저 『오랜만입니다』며 손을 내밀어 악수.
두 사람은 매우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교환한뒤 전씨의 포텐샤승용차에 동승,경내를 돌며 현충탑·애국지사묘역·무명용사탑과 이승만·박정희대통령 묘소등을 1시간여에 걸쳐 차례로 참배.
전전대통령쪽에서는 장세동전안기부장·박영수전비서실장·안현태전경호실장·이양우변호사·민정기비서관등 5명이 수행.
노전대통령쪽에서도 역시 정해창전비서실장·이현우전안기부장·이수정전문화부장관·최석립전경호실장·윤석천비서관등 5명이 수행.
이어 일행은 오찬장인 역삼동의 한정식집「산내들」로 이동.「가리비」요리와 등심·갈비등을 메뉴로하는 산내들에는 노대통령쪽에서예약을 해놓았는데 장세동·박영수·정해창·이현우씨등 4명도 함께식사.
○…전전대통령은 국립묘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연희2동 자택을 찾아온 안현태전경호실장·이양우변호사와 30여분간 대화.
전전대통령은 오전10시30분 자택 대문을 나서면서 환한 펴정으로 「(만남이) 잘 된거지」라고 코멘트.
전전대통령은 안실장등으로부터 회동준비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은뒤 「두분의 만남을 언론에서 환영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 매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 비서관이 전언
○…노전대통령은 오전 10시35분쯤 연희1동 자택을 나서면서 밝은 표정으로 나서면서 취재진에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소감을 묻자 「소감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만나서 애기를 해야지」라며 즉담을 회피.
노전대통령은 이에 앞서 미리 도착한 정해창전비서실장과 20여분간 숙의.
정전비서실장은 「화해모임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뭐 특별히 화해할 일이나 있나. 특별히 큰 의미를 부여할 것 없다」며 의미를 축소.<박보균·오병상·이상일기자>
◎전두환·노태우씨 전격 화해하기까지/카터 전미국대통령 역할등이 영향/“국내외 위기때 경륜발휘” 이심전심
『두분이 이심전심이다….』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의 전격적인 만남에 대해 양측인사들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백담사 귀양등 5공청산의 후유증으로 금년초만해도 화해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두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은 국내외적 정세변화 때문이라고 주변인사들은 전하고 있다.『북한핵 사태로 시작된 안보의 중요성,한총련등 좌파의 목소리가 커지 는 상황등이 이들을 한자리에 밀어넣었다』고 5공인사가 익명으로 전했다.
이런 정치·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전전대통령은 최근 미국「전직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그의 동서인 김상구의원(민자·상주)은 말했다.김의원은 『카터전미대통령이 김일성을 만나 클린턴대통령이 할수 없는 역할을 하고,닉슨 전대통령의 장례식에 클린턴이 달려가 그의 공적을 평가한 장면등에 대해 전전대통령은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씨는 노씨를 만나기로 결정한뒤 주변에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군대시절부터 나는 노가 잘 되기를 바랐고 밀어주었다.대통령선거때「나를 타고 넘어라」고 할 정도로 그를 지원했다.그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일어난 일(5공청산)에 대해서는 나도 결국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
5,6공 화해 분위기는 두사람이 「몇단계 건너 뛴」사돈관계를 맺은 것도 뒷받침됐다고 김상구의원은 풀이했다.
지난 3일 전전대통령의 막내아들 재만씨와 한국제분 이희상사장의 장녀가 약혼했다.이사장은 정소영전농림수산장관의 매부.정씨는 금진호의원과 사돈지간이며,금의원은 바로 노전대통령의 동서다.
『전전대통령은 인연의 묘함에 미소를 지었다』고 측근이 전했다.
그동안 두사람 주변 인사들 일부는 하나회의 숙정,검찰의 12·12수사등을 들어『두분이 화해하지 않아 현정권이 깔보고 있다』며 만남을 권유했다.
결국 양측은 『6·25국립묘지 참배를 놓고 시차를 둘것이 아니라 같이 하자』고 결정했다.실무작업은 안현태(5공)·최석립 (6공)전경호실장이 맡아 극비리에 추진했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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