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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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10)길남이 걸음을 멈추면서 태수를 돌아보았다.일이 여기까지 왔나,문득 길남은 그런생각을 한다.
『어쩌자는 거냐? 도망을 치고 싶으면 너 혼자 하면 될 거 아냐? 왜 날 끌고 들어가려고 그러니.』 태수가 다가와 섰다.
『까놓고 애기하자.너 혼자 갈거냐?』 『무슨 소릴 그렇게 하냐.』 『그만한 눈치도 없는 줄 아니.』 잠시 땅바닥을 내려다보던 길남이 방파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야 이놈아,물에는 길이 없다고 누가 그러더라,너 그거나 알고 하는 소리냐.
『그래…좋다.얘기 좀 하자.』 태수가 다가와 길남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왼쪽에서 벽을 때리고 가는 파도소리가 들린다.길남이 목소리를 낮추며 차갑게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치고 누가 도망갈 생각을 안 해 본 사람이 있겠냐? 그거야 다 마찬가지다.그래서 하는 말인데,가려면 혼자서 가! 이건 패거리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더라.』 『이게 네 눈에는 백지장이냐? 날 샌 소리 하지마.사람이 죽고 사는 거야.』 『하나만 묻자.너 갈거니 안갈거니?』 『나는 가야 한다.아버질 찾아서라도 가야 한다.』 처음으로 길남이 속마음을 말했다.태수가 다가섰다.
『함께 가자.너라면,너하고 함께라면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어.』 『산다는 보장이 없다.알고는 있니?』 『여기 있어도 그런 보장은 없어.여기 있어도,살아 남는다고는 아무도 안 믿어.』 함께 가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도 아니면서 길남은 입술을 깨물어 가면서 말했다.
『다행히 육지까지 무사히 닿는다고 하자.그럴 경우 넌 어디로갈건데? 육지도 마찬가지야,누가 숨겨주지 않으면 거기서도 나돌아 다닐 수가 없어.』 『아는 사람은 있어.』 『누군데?』 『육지에 가서까지 너한테 얹히겠다는 생각은 아니니까 그런 걱정은마.그런데 넌?』 『나? 나야 감옥소 부근을 헤매야지.아버질 찾아야 하니까.그래서 하는 말이다.제발 나랑 튀겠다는 생각은 말라는 거다.』 『날 그렇게도 못 믿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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