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해결 남북대화/“해결의 시작”… 조심스런 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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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클린턴 성명에 담긴뜻/북입장 배려 겉으론 “중대한 진전”/남북대화 지원,껄끄러웠던 한미관계복원도
북한이 22일 김일성주석이 지미 카터전미국대통령을 통해 전달한 대미메시지의 내용이 사실임을 공식 확인하면서 북한―미 3단계 고위급회담의 성사와 한반도 긴장고조의 촉매가 된 유엔안보리의 대북한 제재결의안이 유보되게 됨으로써 북한핵으 로 인한 국제적 위기가 일단 가라앉게 됐다.
빌 클린턴미대통령은 이날 특별성명을 통해 북한의 강석주외교부부부장이 로버트 갈루치 미국무부 북한핵담당 차관보에게 확인공식서한을 보낸데 대해 매우 중요한 진전이 있게 됐다고 논평하고 이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북―미간의 대결국면이 전면적 관계협상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앞으로 부닥칠 문제도 산적해 있다.
특히 북한핵 해결의 장애요인이 되는 칼날로 양측 모두「북―미3단계 고위급회담이 추진되는 동안」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으며 이같은 장애가 표면화되느냐는 것은 3단계 고위급회담에서 정치·안보·경제문제 협의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좌우되게 돼 있다. 미국측은 3단계 고위급회담이 열리는동안 대북한 유엔안보리제재결의안 추진을「유보」함으로써 3단계회담의 진행을 조건화하고,북한측은 같은 조건으로 ▲영변 원자로 핵연료봉재충전 ▲인출 사용핵연료봉에 대한 재처리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의 북한체류및 핵안전조치감시장비 유지등 이른바 북한핵개발 요소들을동결한다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3단계 고위급회담에서 논의할 이른바 정치·안보·경제문제는 ▲북―미 수교 ▲핵무기개발 여부및 주한미군철수 문제 ▲대북한 경수로를 비롯,경제지원문제등이 골자가 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회담에서 ▲북―미 수교문제는 수교가 합의되더라도 세부사항에서 북한과 미국 양측에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등 선결문제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렵고 ▲주한미군철수와 북한의 과거 핵개발 역사규명을 위한 대북한 IAEA특별사찰이 넘기 어려운 장애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경제지원에서 적대국에 대한 경제협력을 금지하는 미국내법의 개정과 미국이 10억∼20억달러가 소요되는 대북한 경수로건설자금 동원능력및 기타 대북한 경제지원을 위한 자금능력이 있느냐하는 의문등이 회담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인해 클린턴대통령은 이번 북한측의 핵개발동결 공식확인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환영을 표시하면서도 아직도 이는 해결이 아니라 해결의 시작이라는 문구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3단계 고위급회담의 장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함을 암시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동시에 이번 북한의 이례적으로 신속하고 전격적인 내용과 반응에 커다란 희망을 표시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번 사태진전을 북한핵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하고 새로운 국면으로 규정,이를 바탕으로 국제적 긴장이 해소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워싱턴=진창욱특파원】
◎김대통령·클린턴 전화조율/“북핵 대화로 해결” 재확인/남북정상회담서도 꼭 의제포함 시사
김영삼대통령과 빌 클린턴미대통령은 23일 핫라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및 북―미 3단계고위급회담 재개 합의는 사태의 긍정적 발전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계속 긴밀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의 통화가 사전협의 없이 이뤄져 청와대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오전7시『7시40분 클린턴대통령이 김대통령에게 전화를 걸겠다』는 갑작스런 통보가 백악관으로부터 오자 관계자들은 통역관을 수배하느라 분주했다.양쪽에 통역관이 배석해야 통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결국 통역관이 도착하는 것을 기다려 예정보다 20분 늦게 오전 8시에야 통화가 시작됐다.
이 해프닝은「시간·장소에 구애받지 않고」긴밀히 협조하자는 약속에 따라 백악관이 전화를 걸어온 것인데 우리측이 준비를 못했던 것이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런 상황 전개가 문제의 해결은 아니며,다만 문제해결의 기회가 제공된 것이므로 신중히 대처할 것을 강조했고 양국대통령은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핵문제 해결임을 분명히 했다.
첫째,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의 제재가 아닌 대화를 통해 풀어가겠다는 것이다.여기에는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는데 따르는 부담과 함께 대화를 통해서도 북한을 설득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서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둘째,남북정상회담에서 반드시 북핵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져야 함을 강력히 시사했다.북한은 그간 핵문제는 미―북한간에 논의될 사안이라고 거듭 주장해와 남북정상회담에서 이를 기피할 소지가 충분했는데 그런 기도에 쐐기를 박는 의미가 있다.
셋째,클린턴대통령이『남북이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한 것을 환영하고 기대한다』고 공개리에 지지를 표명한 것은 북한이 정상회담을 국제사회의 제재나 미―북한 회담 재개의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보인다.
넷째,남북정상회담 시기가 미뤄져서는 안된다는 시사다.
클린턴대통령은 북한측이 원자로에 연료봉을 재장전하지 않고,교체된 연료봉을 재처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통보해옴으로써 7월초 제네바에서의 고위급회담 개최를 협의중이라고 했는데 이는 두 회담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밝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다소의 균열이 있는듯 하던 한미관계의 복원이다.
양국대통령은 북핵문제 처리를 위해 시간·장소에 구애받지 말고 수시로 협의하자고 약속한바 있다.한미양국의 공조는 카터전미대통령의 방북과 이 과정에서 나타난 미국의 대북정책 급선회로 흔들렸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김현일기자〉
□클린턴 성명 전문
지금 북한 상황에서 중요한 진전이 있음을 발표하고자 한다.오늘(한국시간 23일)오후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이 지속되는 동안 핵개발 계획을 동결할 것이라는 내용의 공식서한을 접수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다음달 초 제네바에서 3단계 고위급회담을 추진할 준비가 돼있음을 북한에 통보한다.
북한은 3단계 고위급회담을 추진하는 동안 ▲영변원자로에의 새로운 핵연료 장전 ▲사용 핵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북한은 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팀을 북한에 잔류시키고 영변 원자로의 안전조치 감시장비를 계속 유지하도록 할 것이라고 확인했다.미국은 북―미간의 대화기초를 회복하는 이같은 매우 긍정적 진전을 환영한다.
핵문제에 관한 발표에 덧붙여 미국은 북―미 3단계 고위급회담에서 북한과 국제사회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안보·정치·경제문제에 대해 광범위한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음을 밝힌다.
미국은 이 대화기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대북한 제재 노력을 유보할 것이다.미국은 또 남북한 정상회담 추진 합의를 환영한다.
나는 이번 진전을 이루어내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지미 카터전대통령에게 감사한다.이번 진전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해결을 발견하는 새로운 기회다.이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노력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음을 의미한다.미국은 이번 진전이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분리시킨 제반문제의 해결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미국은 지난 1년여간 우방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추구해온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확고하고 현실적이며 단호하게 계속할 것이다.이같은 접근방식은 보답을 받을 것이며 미국은 이를 계속 추구할 것이다.이번 진전은 좋은 소식이다.미국이 이제 해야 할 일은 이같은 소식을 영구적 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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