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해결 남북대화/“대승적 차원서 정상회담 임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전문가들 어떻게 보나/“우리입장만 주장땐 그르칠수도”/“핵투명성보장 적극자세가 중요”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점차 확실해지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분단 반세기만에 이뤄질 이번 회담이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큰 기대를 걸고있다.
현상태에서 북한이 국제적인 제재를 일시 피하기 위한 제스처로 정상회담을 제의했을 가능성도 물론 배제할 수는 없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는 북한의 속셈이 무엇이든간에 이번 기회를 남북문제 해결의 돌파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평화연구소의 김남식 연구위원은『정상회담의 의미를 격하시켜서는 안되며 민족문제 해결에서 너무 전술적인 접근에만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대승적인 견지에서 일단 김일성 주석의 뜻을 액면 그대로 믿을 필요가 있다』며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김위원은 이어『우리쪽에서 너무 핵문제 우선해결 정책에만 매달릴 경우 회담자체를 그르칠 수가 있고 갈등극복도 그만큼 어려워지므로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사 정신으로 돌아가 민족우선의 입장에서 김주석을 만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위원은 따라서 오는 28일 있을 판문점 예비접촉에서 정부가 너무 우리측 입장만을 주장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학준교수(단국대)의 견해는 약간 다르다.
그는 정상회담 그 자체 보다는 북한핵문제 해결에 필요한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교수는『(정부가)자칫 상황을 잘못 처리할 경우 북한에 대해 핵개발을 할 수 있는 시간만 더 주게되는 꼴이 될 것이므로 정상회담에서는 핵개발 계획동결은 물론 핵투명성 보장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유엔의 대북제재 분위기를 보고 상당히 다급하게 느낀 나머지 국면전환용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했다고 전제하고『앞으로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끝까지 북한의 태도를 예의주시해야 한다』며 경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교수는 따라서 『핵투명성 보장을 위해 정상회담에서는 물론 미국에 대해서도 과거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은 낙관적이지만 이 기회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회담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므로 사전에 신중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정상회담의 전망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도 없지는 않다.
민족통일연구원의 길정우 정책실장은『28일의 예비접촉이 남북관계나 핵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당혹한」상황』이라고 말했다.길실장은『궁극적으로 미·북한간 협의가 있기 전에는 남북한간에 무게 있는 협의가 이뤄질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미·북한간 합의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고 이에따라 정상회담의 폭도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김주석의 회담제의를 즉각 수락한 것과 관련,김동성교수(중앙대)는「중대 현안을 즉시적으로 결정해 사태를 획기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상대방의 발목까지 잡겠다는 전략」으로 굳이 비판받을 행태는 아니며 김대통령 특유의 스타일에서 비 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의 정상회담 제의에 대해 양성철교수(경희대)는 『대결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진입,긴장완화 차원에서 정상회담 논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서도 『북한의 말만을 너무 믿어서는 안되며 말보다는 행동에 비중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양교수는 북한이 대화자체에 목적을 두고있다기 보다는 유엔안보리나 미국이 중심이 된 대북한 제재를 막고 핵개발의 모호성을 계속 유지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그는 또『과거와는 달리 김주석이 직접 지시해 이뤄진만큼 전보다 무게가 실린 것만은 사실이며 따라서 1단계 예비접촉은 쉽게 이뤄질 것이지만 다음 단계 회담은 아직 미지수』라며 남북회담 전망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김창순 북한문제연구소장도 『예비접촉에서 우리가 핵문제를 언급하면 북한은 이 문제를 북―미회담의 의제라며 회피할 것으로 보인다』며『예비회담을 좀더 지켜보면 김주석의 절묘한 평화전술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상회담에 임하는 우리측 태도와 관련,김동성 교수는『반세기만의 정상회담을 국민적 축제차원으로만 봐서는 안되며 정부도 침착하고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덧붙였다.〈김준범기자〉
◎북측 수석대표 누가 될까/김영남 외교부장 가장 유력/전금철 등 정치협상 명수 물망
이홍구통일부총리가 사실상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의 우리측 수석대표가 되자 정·관가에선 『우리가 수석대표 하나는 제대로 골랐다』는 말이 나돌았다.과거 경력이나 성품·언변·이미지등을 감안할때 그만한 적임자가 다시 없다는 공감대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런 그가 과연 지난 45년간 굳게 잠긴 분단의 빗장을 제거하고,북핵위기를 해소하고, 한반도에 화해와 협력을 정착시킬 정상회담의 길잡이가 될 것인가가 관심이다.
그러나 정작 이부총리는 일단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다.북한의 전통문이 전달된 22일 광화문 부근 식당에서 점심을 들다 그 내용을 보고받고도 그는 그저 『북의 전통문은 만나보자는 얘기』라며 깊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상회담 이 성사되기까지는 숱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는데 국면국면마다 일비일희하는 것은 옳은 「정부 당국자」의 태도가 아니라는 식이다.
그가 가진 장점은 이런 차분한 면모 말고도 지난 30년간 남북문제를 이론과 실무측면에서 두루 다뤄본「프로 통일꾼」이라는 점일 것이다.
경기도 고양 출신인 그는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거쳐 59년 미에머리대에 유학한후 69∼80년 서울대 사회학과 부교수로 재직했다.88년 노대통령에 의해 제14대 통일원장관으로 발탁,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한민족통일방안을 설계했다 .
그는 아주 복잡한 사안을 지극히 단순화된 용어로 압축해내는 장기도 가지고 있다.이미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북한의)핵무기반개 소유는 (한반도의)비핵화공동선언 무효를 뜻한다」는 말이나「선의의 압력」「남북관계의 2중적 모순구조」「북한의 가장 큰문제는 노동당의 자신감 결여」같은 표현도 그가 만든 용어들이다.물론 이부총리와 대좌할 북측 수석대표 후보들 면면들도 만만치않다.
현재 거론되는 북측 수석대표로는 정무원(내각)의 김영남외교부장겸 부총리가 꼽히고 조평통 부위원장인 전금철·안병수·임춘길,그리고 서기국장 백남준등이 거명되고 있다.
이들중 가장 하위직인 백남준만해도 1민족1국가론등 북한의 통일이론 창출 과정에 깊숙이 간여한 대남전략분야의 대표적 이론가이고,전금철부위원장도 당국간 정치협상이나 통일전선전술등에 두루 능한 인물이다.하나같이 녹녹지 않은 인물들인 것이다.
언젠가 이부총리는 사석에서 『협상에서 한편의 이익이 1백% 반영되면 그것은 실패한 협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협상을 평가하는 기준은 협상 결과의 준수 여부지,어느 한편의 요구를 상대편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나머지 협상 자체를 사문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최원기기자〉
□남북회담일지
▲79.1.19=박정희대통령,「남북한 당국자 무조건 만나자」제의 ▲81.1.12=전두환대통령,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과 김일성의 조건없는 서울방문 초청
▲81.1.19=김일 북한부주석,전대통령의 제안거부
▲81.6.5=전대통령,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간 직접회담 제의 ▲81.7.1=김일성,전대통령의 제의 거부
▲82.8.15=전대통령,남북한 최고책임자회담 거듭 촉구 ▲84.1.11=손제석통일원장관,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회담 또는 각료회담 개최 제의
▲84.2.14=진의종 국무총리,버마 랑군 사건 사과와 남북한 당국자의 직접대화 촉구
▲88.1.1=김일성,쌍방 당국자 포함한 남북연석회의 제의
▲88.2.25=노태우대통령,김일성과 대화용의표명
▲88.8.15=노대통령,남북한 최고책임자 무조건 조속회담 제의 ▲88.9.8=김일성,남북정상회담 용의 표명
▲88.10.18=노대통령,평양방문 회담 용의 표명
▲89.1.16=연형묵 북한 정무원총리,한국측의 남북 고위당국자회담 제의 수락및 예비회담제의
▲90.1.1=김일성,남북한 최고위당국 정상수뇌협상 제의
▲90.1.10=노대통령,남북한 통행·통신·통상협정 위한 정상회담 촉구
▲93.2.25=김영삼대통령,「언제 어디서든 김일성 만날 용의」표명
▲93.5.25=강성산 북한 정무원총리,특사교환 통한 정상회담 논의 제의
▲94.2.25=김대통령,핵문제 관계없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의사 표명
▲94.6.18=김일성,지미 카터 전미대통령 통해 정상회담 제의 ▲94.6.18=김대통령,김일성 제의 즉각 수락
▲94.6.20=이영덕총리,정상회담개최 위한 부총리급 예비접촉 제의
▲94.6.22=강성산 북한 정무원총리,예비접촉 제의 수락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