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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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동그란 눈에 도깨비 뿔을 단 로봇 소년이 두 팔을 쫙 펴고 하늘을 활기차게 날기 시작하면 여기에 맞춰 주제곡이 흘러나온다.70년대 TV 연속만화로 인기를 끌었던『우주 소년 아톰』은 일본 만화의 대부인 데스카 오사무의 작품이었다.전 후 잿더미 위의 일본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준 만화였다.미야자키 하이오라면 살아있는 일본의 월트 디즈니라 불릴만큼 유명한 만화영화 감독이다.그가 만든『미래 소년 코난』또한 암울했던 80년대초 우리 학생들에게까지 친숙한 친구가 되었다 .80년대 후반에는 코난의 주제가가 대학가의 응원가로 불릴만큼 유명했다.
90년대 들어 한국 청소년문화에 깊은 영향을 끼친게 뭐냐하면일본 만화『슬램 덩크』라고 꼽을만큼 그 위력은 컸다.지금껏 15권 발매에 2백만부 이상이 팔린 이 만화는 청소년 사회에 농구 붐을 일으키면서『마지막 승부』라는 TV농구 연속극으로 발전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 모두가 일본 만화지만,좋은 만화란 이처럼 국경을 넘어 청소년의 꿈을 키워주기도 한다.그러나 나쁜 만화는 청소년의 꿈을짓밟으면서 악화가 양화를 쫓아내는 철칙을 따른다.나쁜 만화가 한번 발 붙이기 시작하면 좋은 만화는 설자리를 잃고 청소년들은 저질만화의 폭력과 선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요즘은 어린이들마저 국산 만화를 누가 보느냐고 한다.국내 만화 수요의 90%를 일본 저질만화가 차지하고 있다니 우리 만화가 끼어들 자리마저 없다.우리 만화는 까다로운 만화심의 절차를 거쳐 나오지만 일본 저질만화는 해적판으로 뒷거래 를 통해 암매되고 있으니 우선 폭력·섹스등 저질경쟁에서 상대가 되질 않는다.그림은 그대로 베끼고 한글만 집어넣었으니 제작비가 들게 없어 정상적인 만화보다 반값으로 유통된다.이러니 누가 재미없는 국산만화를 보겠는가.
한때는 국내 만화도 많은 성장을 해 만화가가 대중 스타로 부상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잠깐이었다.국내 만화잡지가 문을 닫기 시작했고,오랜 역사를 지닌 유수한 소년지들이 더이상 출혈을 감당치 못해 곧 폐업할 지경에 이르렀다.이 모두가 일본의 저질만화 탓이라면 남에게 핑계를 돌리는 꼴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다.어린이들의 꿈을 키워왔던 소년 잡지들이 문을 닫는다는 일도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저질만화로 우리 청소년들의 가슴은 얼마나 황폐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저질만화,이젠 말로만 할게 아니라 소탕작전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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