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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해선 안 될 ‘김정일의 經濟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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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10면

현대그룹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이 대북사업을 처음 추진할 때 애먹은 게 하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제관(經濟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대화를 할 때마다 엇박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은 북한의 경제개발 구상을 밝히면서 김 위원장에게 노동집약적인 굴뚝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신발공장과 선박수리소 건립을 권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고개를 갸우뚱하기만 했다. 뒤늦게 알려졌지만 그는 반도체·컴퓨터 등 최첨단 전자산업과 금강산·백두산 등 무공해 관광산업을 염두에 뒀다. 북한 주민이 비록 끼니를 걱정할 정도지만 일단 문을 열면 단박에 선진국형 경제체제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의욕이다. 김 위원장은 남북경협을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신발공장 같은 것은 관심조차 없었다는 얘기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최첨단 전자산업과 무공해 관광산업 육성뿐이다. 영화광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비디오를 3000편 이상 봤다고 한다. 영화를 통해 세상을 꿰뚫어 보는 사람의 경제관은 녹록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귀띔이다.

김 위원장의 경제철학으로 보면 남측 파트너 기업으로 현대그룹보다는 반도체를 만드는 삼성이나 관광·호텔사업에 정통한 롯데가 더 어울리는 셈이다. 실제로 북측은 남측 인사를 만날 때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과 롯데의 신격호 회장 방북을 은근히 요구했다. 하지만 이 회장과 신 회장은 그간 못 들은 척했다. 이 회장이 다음달 2∼4일 평양에서 열리는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윤종용 부회장을 대신 보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1차 회담 때도 윤 부회장을 보냈다. 삼성은 대북 사업에선 '2등전략'이라고 말할 정도다. 신 회장도 사석에서 "진짜 사업가라면 아직은 북한에 들어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권 말기인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치적 헛구호보다는 가시적인 경제교류에 역점을 둬야 할 판이다. 노 대통령과 동행하는 기업인의 면면에 더욱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구본무 LG 회장 등이 따라간다지만 김 위원장이 구애(?)하는 이건희 회장과 신격호 회장 두 사람은 빠졌다. 청와대는 뭘 아는지 모르는지 신발업체 대표 기업이라며 태광실업의 박연차 회장까지 끼워 넣었다.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보면 ‘깜도 안 되는 경제인’들을 만나는 건 아닐까.

▶지난 주

25일 미 8월 기존주택 판매 감소=549만 채가 매매된 것으로 나타나 주택시장 둔화가 다시 확인됐다. 월가의 예상치와 같았으나 전달(575만 채)보다 26만 채 줄어들었다.  
 
▶이번 주

1일 공정거래위, 대그룹 채무보증 현황 발표=대그룹 계열사끼리 빚보증을 얼마나 섰는지 발표한다. 지난해 59개 조사대상 대그룹의 보증액은 2조2000여억원으로 전년보다 40% 급감했다.
4일 공정거래위, 지주회사 현황 발표=지난해에는 8개 기업이 지주회사로 전환해 총 31개로 증가했다.
5일 미 9월 비농업부문 취업자 수 발표 =전달에는 예상을 깨고 4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 주식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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