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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정착촌 르포] 대학생 기획·탐사 공모전 당선작 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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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08면

충북 청원군 은행리 한센인 정착촌에 사는 한 노인의 손이 뭉개져 있다. 이 정착촌에는 한때 20여 가구가 살았으나 지금은 4가구만 남아 있다. [청원=강제욱 사진가]

중앙SUNDAY가 주최한 제6회 대학생 기획·탐사기사 공모전의 당선작을 세 차례 게재합니다. 대학생들이 취재현장을 발로 뛰며 땀 흘려 쓴 기사를 수정·보완했습니다. 첫 번째로 우수상을 받은 ‘한센인 정착촌 르포’를 싣습니다.

세상에 버림받고 자식에게 버림받고…

오그라든 손으로 폐허처럼 변해버린 흙벽돌집에 시멘트를 바르는 것조차 버겁다. 코가 내려앉아 평평해진 얼굴에 수십 가닥의 주름살이 구불구불 기어간다. 더 굵고 깊어 보이는 주름살. 무시무시한 차별, 짐승처럼 취급 당했던 냉대가 주름에 스며 있다. 이들은 한센인. 병의 이름이 자신들의 대명사가 돼버린 기구한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이다.

“집이 다 무너져서 무슨 귀신 나오는 곳 같아도 치울 사람이 없네. 오래되니 다 찌그러지고 부서지고 했는데 내가 이 손으로 뭘 할 수가 있어야지.”

충북 청원군 남일면 은행리의 자그마한 한센인 마을에 사는 신경순(64·여)씨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신씨는 40년 전에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지은 흙벽돌집에 혼자 산다. 지난해까지 돼지를 키우던 축사엔 거미줄이 무성하다. 부서지고 낡고 흙먼지가 뽀얗게 앉았지만 신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기력이 떨어져 힘든 일을 할 수가 없다. 20만원이 채 안 되는 정부의 생계보조비로 근근이 살아간다. 텃밭에서 기른 옥수수가 주식이라고 한다. 1년에 한 번 자식들이 오긴 하지만 정확히 어디 사는지 알지 못한다.

신씨가 사는 은행리는 마치 유령 마을 같았다. 20여 가구의 집이 있었지만 4가구만 사람이 살 뿐 나머지는 폐가(廢家)로 방치돼 있다. 어떤 집에는 지하수를 퍼내던 펌프가 벌겋게 녹슬어 있었고 ‘Gold Star’ TV가 마당 한구석에 버려져 있다. 옆집에는 헌 리어카, 괭이나 호미, 부서진 자전거, 구형 컴퓨터 모니터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망가진 축사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은행리 한센인들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뜨거나 인근 원통리 정착촌으로 이사 갔다.

은행리는 청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걸리는 곳으로 인근에 동네가 없다. 진입로는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다.

이 마을에 사는 문순임(75·여)씨 역시 한센병이라는 굴레를 쓰고 숨죽이며 살아왔다. 스물네 살 때 한센병 판정을 받은 그는 가족의 눈총에 못 이겨 스스로 집을 나왔다. 그 후 4년 동안 거지굴에서 구걸로 연명했다. 배우자를 구하기 힘들어 한센인과 결혼했다. 꿈도 사랑도 없었다. 삶은 오로지 참혹한 현실로만 그의 기억에 남아 있다.

문씨의 오른손엔 검지와 중지가 없다. 서른셋 되던 해에 남편과 사별하고, 한겨울에 나뭇짐을 하러 갔다 동상에 걸려 잘라냈다. 안 그래도 오그라든 손에 검지와 중지까지 없으니 손목 밑으론 손바닥만 붙어 있는 듯했다. 세 남매를 굶길 수 없었던 그는 남은 세 손가락으로 호미를 잡았다.

문씨는 지금 며느리, 손자 셋과 더불어 한집에 산다. 문씨는 아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오래전에 집을 나간 것 같았다. 1968년 지은 흙벽돌집은 46㎡(14평) 정도에 불과해 찬 부엌 바닥에서 새우잠을 자야 한다. 낡은 지붕에선 물이 샌다. 하지만 문씨는 집을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돈이 없기 때문이다. 문씨는 정부에서 나오는 생계비와 장애수당 20여만원, 며느리가 버는 약간의 수입으로 살아간다. 이 돈으로 세 손자 뒷바라지하기에도 빠듯하다.

“우리 같은 병신들은 부모·형제에게 버림받고 세상에 버림받았어. 약에 곯고 삶에 지쳐 골골댈 수밖에 없어. 지긋지긋한 가난의 수렁에서 헤어날 길이 있어야지.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취재진이 지난 7월 말 은행리 정착촌을 찾았을 때 여느 사람처럼 한센인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문씨의 오그라든 손을 잡았을 때 ‘혹시 병이 옮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씨의 손을 잡고 그의 삶을 들으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두 시간가량 짧은 만남 동안 문씨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여러 차례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취재진을 안내한 정상구(40·소망감리교회) 목사는 “한센인들은 모두 노인이 됐다. 이들이 세상을 뜨면 그 병의 흔적도 사라질 것이다. 그들은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왔다. 여생을 이렇게 대우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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