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남표 총장 '준비된 리더십' 결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은 65세 정년을 보장받는 교수인 테뉴어(Tenure) 신청자 38명 중 15명(39%)을 탈락시켰다. 다시 신청할 수 있지만 획기적 업적을 내놓지 않는 이상 3년마다 갱신하는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나야 할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KAIST 교직원, 나아가 국내 대학 교단 전반에 던지는 충격파는 상상 이상이다. 정년 보장이 기본이라는 교수사회의 인식 틀이 무너지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KAIST 혁명'의 한복판에 서남표(71) KAIST 총장이 자리하고 있다.

◆서남표의 리더십=전임 로버트 로플린 총장 시절 같았으면 이번 사태는 교수들의 연판장이 돌고 비상총회가 소집될 만한 폭탄 같은 조치다. 또 등록금 유료화 조치는 웬만한 대학 같으면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 농성 사태를 불러올 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큰 잡음 없이 차근차근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 KAIST에선 학내 분규 대신 박수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한 총장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완급 조절, 대학 이해당사자 설득 능력, 솔선수범의 자세가 그의 리더십 요체라고 주변에선 평한다. 그는 이번 '대량 탈락' 조치를 밀어붙이기 전에 교수 의견을 면밀히 수렴해 심사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내국인 전문가 10명 이외에 외국인 전문가 네댓 명을 더해 객관성을 강화했다.

그는 28일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KAIST의 새 테뉴어 심사기준은 하버드.스탠퍼드 같은 미 일류대학 못지않게 엄격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탈락 교수 중에도 훌륭한 분이 많아 가슴 아프지만 KAIST가 세계 일류 대학이 되려면 불가피한 진통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서 총장은 KAIST를 위한다면 자존심마저 접기도 한다. 한번은 "기획예산처 과장이 대학의 교수 정원까지 관리하느냐"고 공개적으로 말했다가 "KAIST의 예산권을 쥔 관리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게 좋지 않다"는 조언을 듣고 즉시 사과 편지를 썼다.

외부 강연이나 집필로 들어오는 수입은 KAIST 발전기금으로 내놓는다. 승용차 이동 중에 10분 넘는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노트북을 연다. 새벽 서너 시에도 e-메일 답장을 하기도 해 "서 총장은 잠을 자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돈다. 이남구 총장 비서실장은 "서 총장은 개인 일정을 짤 때 'KAIST를 위한 것이냐'를 곧잘 기준으로 삼는다"고 전했다.

◆개혁은 이제 시작=서 총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하자마자 국내 어느 대학도 엄두를 내지 못할 만한 파격적인 청사진을 내놨다. 굵직굵직한 것만 꼽아도 ▶교수 정년제 개혁을 비롯해 ▶성적 부진 학생의 학비 유료화(연간 최대 1500만원) ▶강의 부실 교수의 강의 자격 박탈 등이다. 이 중 수업료 유료화와 전 과목 영어 강의는 올 봄 신입생부터 적용했다. 임기 4년이 끝날 무렵이면 자연스레 전교생으로 확대된다. 올 신입생 중 1학기 학점이 3.0 미만인 학생은 4명 중 한 명꼴로 알려졌다. 2학기 성적마저 시원찮으면 공짜는커녕 국내 공과대 중 가장 비싼 수업료를 내야 하는 학생이 무더기로 속출할 판이다. 장순흥 부총장은 "학사관리가 빡빡해지는데도 KAIST 지망생은 늘고 있다"고 전했다. 2007학년도 1차 수시모집에 1800여 명이 응시했던 것이 2008학년도 1차에는 2320명이 왔다는 것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서남표 총장=서울사대부고 2학년 때 미국 이민을 갔다. MIT대 기계학과를 나와 재외 한국인 과학자 중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룬 경우에 속한다. 고객 요구를 만족시키는 최적의 설계 이론인 '공리적 설계'를 창안해 세계적인 바람을 일으켰다. 미 과학재단 부총재를 맡기도 했다. 1990년대에 미 미시간대와 KAIST에서 총장직을 제안했으나 연구 욕심에 고사한 적이 있다.

◆테뉴어(tenure)=대학교수의 '종신 재직권'을 뜻한다. 교수 임용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연구 성과 등의 심사를 통과하면 정년을 보장해 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