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식 고려대총장 취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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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금 우리는 고려대학교의 제1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또 한세기를 전망.구상해야할 뜻깊은 시점에 서있읍니다.
돌아보건데,국권수호가 최고의 가치였던 우리 근대화의 여명기로부터 국권회복이 절대명제였던 식민지시대를 거쳐,민족통일이 지상과제로 남아 있는 오늘의 분단상황에 이르기까지,우리 고려대학교는 언제나 민족사의 선두에 서서 그 사명을 다해왔 습니다.
바야흐로 후기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이 시대의 격렬한 사회변동에도 불구하고 고려대학교의 이 자랑스런 역사적 특성만은 끊임없이 유지 계승되어야 할 빛나는 유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전세계적인 異常變化의 동시다발 현상에 대해서,현존하는 용어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희구하는 새 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은 세계적 보편성과 민족적 특수성을 조화 접목시켜 나아갈 수 있는 투철한 역사의식의 소유자이어야 하겠습니다.
일찍이 삼국시대에 가장 후진국이었던 新羅가 통일의 주역이 될수 있었던 그 저력이 무엇이었겠습니까.신라는 당시 동아시아의 보편적 가치였던 불교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거기에만 안주하지 않았습니다.화랑도의 완성에서 보는 바와 같이「玄 妙之道」라는 전통적 민족사상을 불교에 접목시켜 호국대승불교의 새로운 정신적원천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에 마침내 통일대업을 완수할 수있었던 것입니다.신라의 이와같은 경험은 주체성을 바탕으로 세계적 보편성을 창조적으로 소화하는 지혜와 역 량을 가진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교훈을 오늘에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날 고려조나 조선조의 국세가 상대적으로 크게 떨치지 못했던 것도 각기 불교와 유교라는 보편적 가치에만 집착한 나머지 자신의 특수성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보편적 가치로 신봉하고 있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원리도 절대 지상의 가치일 수는 없습니다.그것은 생존의 논리,현상유지의 논리는 될지언정 활력이 넘치는 번영의 논리,지속적 발전의 논리는 결코 될수 없다는 뜻입니다.이미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 사회는 그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세계 도처에서 갖가지 모순과 갈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소외와 인간상실이빚어내는 정신적 황폐화 현상을 치유 하지 못한다면 아마 미래의세기는 더욱 불행한 시대가 될 것입니다.
반대로 주체사상이라는 특수성에만 매달려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는 북한이 미래를 향한 전진은 고사하고 생존 그 자체가 어려운 상태에 빠져들고 있음은 당연한 논리의 귀결이라 하겠습니다.이렇게 볼 때 우리는 자기의 정체성을 잃고 보 편주의 일변도로 치닫는 맹목과 보편적 가치를 외면한 채 고립주의적 특수성만 고집하는 猪突 그 어느 쪽도 올바른 길이 아님을 인식하게 됩니다. 맹자가 이르기를『풍년에는 자제들이 게을러지고 흉년에는자식들이 사나워지기 쉽다』고 했습니다.이것은 단순한 옛말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남과 북의 젊은이들이 처한 정신적 위기를 진단하는 아주 적절한 경구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분단의 극복은 이렇듯 역사적 성찰까지를 포함하는 명제이기에 단순히 영토와 인구의 통합에만 국한될 수없는 정신사의 과제요,산업사회 이후의 문명사적 전환을 예비하는 명제이기도 합니다.
이 벅찬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우리는 더욱더 보편성과 특수성의 원리를 포용하고 조화 통일시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인간을 길러내는데 우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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