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인식전환 필요하다:상/지만원 군사평론가(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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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겨냥 「정치무기」 군용착각
북한핵문제가 급기야 유엔에 의한 제재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한반도의 긴장도 한층 고조돼가고 있는 분위기다.일부 국민들 사이에는 전쟁발발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쌀·라면등 생필품 사재기 현상도 없지 않다.미국을 비롯 한 국제사회는 과연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있을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 것인가.북한핵문제를 보는 우리의 기본인식과 향후 대처방안등을 2회에 걸쳐 긴급진단해본다.<편집자주>
미―북한간 감정 대립의 종착점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이다.그러나 이는 중국·일본,그리고 러시아에 의해 잘 견제되고 있다.원래 북한은 감히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못된다.북한이 미국과 대립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남한이라는 인질이 있기 때문이다.만일 전쟁이 발발한다면 남한은 대책없이 초토화된다.그러나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북한이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자멸행위다.
북한은 일시적으로 남한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겠지만 몇달후 전쟁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보면 김일성 부자의 생명은 이미 끝나 있게 된다.남한이 북한의 인질이라면 김일성 부자도 미국의 인질인 것이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을 예측할 수 없는「망나니」라고 생각해왔다.따라서 그는 전쟁을 도발하는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이는 흔들리는 나뭇잎만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김일성이 보여준 일련의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그는 매우 선이 굵고 안정성 있는 게임을 주도해왔다.따라서 그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만큼 섣부르거나 어설픈 상대는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대립국면은 최후의 선을 넘지 않는 범위내에서 벌이는 게임에 불과한 것이다.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철저하게 북한의 인질이 되어있다.
첫째는 스커드 미사일에 의한 인질이다.북한이 스커드로 남한의 핵발전소들을 공격하면 남한은 핵에 의해 멸망한다.마치 적진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해 놓고 한방의 총알로 그 다이너마이트를 명중시키면 적진이 멸망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북 한 특공대에 의해서도 남한의 핵발전소는 폭파될 수 있다.남한을 핵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구태여 핵보복을 감수하면서까지 핵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둘째는 화생무기에 의한 인질이다.북한은 이미 2천t 이상의 화학물질을 가지고 있다.이는 남한 인구를 3회 이상 전멸시킬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화생무기의 위력은 핵무기 위협에 비해 매우 구체적이다.핵무기로 다른 나라를 공격한 국가가 이 세상에 버젓이 살아간다면 세계질서는 유지될 수 없다.따라서 북한이 핵으로 남한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자멸행위인 것이다.그러나 화생무기는 마치 프로 레슬러의 반칙처럼 틈틈이 사용될 수 있다.우리에게 핵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이 화생무기인 것이다.
셋째는 대구경 포에 의한 인질이다.서울은 남한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인구와 부가 밀집돼 있기도 하지만 정부 기구가 있고 고관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서울을 향해 조준돼 있는 대구경 무기들은 분당 5천발이상의 엄청난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한시간만의 공격으로도 서울은 대책없이 파괴되고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조기 경보기도,패트리어트도 이를 막을 수는 없다.
북한이 마음만 먹는다면 남한은 위 세가지 공격으로부터 속수무책이다.우리의 안보는 그만큼 철저히 미국에 의존해 있는 것이다.지금 큰소리를 치기엔 우리가 해놓은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핵보다 더 무서운 무기는 이상의 세가지다.
북한이 그동안 10만큼 무서운 무기들을 가질 때까지는 무감각하다가 1만큼 더 무서운 핵무기 하나를 더 추가한다는 사실에 「전쟁불사」로 호들갑떠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핵무기 하나만을 독립적으로 떼어놓고 보면 그 위력은 대단하다.그러나 위 세가지 살상무기 위에 추가되는 핵무기의 「한계 위협」은 별것 아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두가지 의미를 부여해 준다.첫째,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이나 후나 남한은 북한으로부터 똑같은 군사적 위협아래 놓여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둘째,북한 핵은 남한을 향한 군사적인 무기라기 보다 미국을 향한 정치적인 무기라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취약한 시점에서 만일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될 것이다.1970년대에 카터는 한국의 안보가 가장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켰다.그때 우리의 선택 역시 핵무기 개발이었다.
이는 북한에도 적용된다.따라서 우리는 핵을 가지려 하는 김일성을「망나니」로만 간주해서는 안된다.지금 북한이 처해있는 고립무원의 상황하에서 그가 핵무기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전쟁을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북한핵은 군사적 무기가 아니라 정치적 무기라는 사실,그리고 김일성이 결코 「망나니」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착안한다면 전쟁예방을 위한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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