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북한 속셈과 우리대응-國籍있는 강경책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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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월13일 北韓이 국제원자력기구(IAEA)탈퇴를 선언함에 따라 국제사회의 對北제재 분위기는 한층 더 고조되고 있다.바야흐로 北核문제는 또 한번 벼랑 끝에 선 것이다.그러나 北韓의「벼랑끝」핵외교는 익히 보아온 것이기도 하다.정작 기 로에 선 것은 한국의 핵정책이다.
6월 들어 한국 정부는 유례없이 강한 태도를 나타내면서 對北제재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우리 대통령이 빌 클린턴 美대통령과의 통화를 통해「韓美共助」「對北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는가하면,러시아와 中國에도 對北 제재 동참을 요청 했다.
유엔 安保理 상임이사국들과의 對北 제재 절충을 위해 韓昇洲외무장관이 황급히 美國으로 날아갔는가 하면,金泳三정부 출범 이후최초로 국가안보회의가 소집되었다.무언가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政府.與黨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들이다 .그러나「韓美공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이런 類의 조치들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강경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주장은『北韓도 한번 혼이나야 한다』『北韓이 우리를 향해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판에 제재를 반대해서는 안된다』이다.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는「국적불명」의 강경론일 뿐이다.
우선 「强硬策」의 참뜻을 짚어보자.스스로 북한을 혼낼 수 있는 「自主的 응징수단」을 가지지 못한 한국이 강경책을 운위한다는 것은 결국 미국의 응징수단에 의존함을 뜻하는데,이것이 진정한 강경책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와함께 되새겨봐야 할 대목은 미국의 對北 제재 결정에 우리가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昨今의 北核 위기란 기본적으로는 기존의 핵확산금지조약(NPT)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이라는 핵 패권국과 이에 도전하는 北韓이 벌이는핵 게임이며,미국의 對北 제재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지게되어있다.그렇다면 미국이 조성해가는 對北 제재 분위기에 우리가박수치고 나설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인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는 물론 북한에 대한 제재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주장과는 다르다.결정권도,스스로의 응징수단도 가지지 못한 한국이 「만약의경우 북한에 對南 보복 명분만 더해주는」몸짓을 보일 필요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전쟁을 불사하는 태도를 보여야만 전쟁없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논리가 있음도 모르지 않는다.그러나 이 역시 전쟁을 불사할 수 있는 능력과 입장이 과시될 때 설득력을 가지는 논리다.대책없이 對北 강경론을 주도(?)하는 한국 의 모습을 보면서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옛말이 떠올랐다.최악의 경우 한반도에 엄청난 화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일들이 「韓美공조」란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國籍있는「강경책」이란 다른 곳에 있으며,美國과 北韓이 벌이는核게임과는 무관하게 조용히 추진되어야 한다.다름아닌「내것」챙기기다.우리가 核무기를 포기한 非核國이기는 하나 원자력의 선진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능력을 高揚시키고,국산 미 사일 개발 등을 통해 북한의 위협을 상쇄해 나가는 현명함을 보일 때 이를 두고 後世는「한국의 강경책」이라 기록할 것이다.
합법적 核능력이나 미사일 개발권 등이 미국에 압류된 채,그러니까 우리 스스로 조용히 추진해야 할 국적있는 강경책은 포기한채 미국의 강경책에 춤추고 있는 우리 스스로를 보면서 어찌 답답한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지금이라도 생각을 바 꾸는 것이 좋다.국제사회의 對北 제재가 불가피해 졌을 때 우리가 어떤 대비를 하는 것이 禍를 최소화하는 길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벌거벗은」모습을 내 국민에게 보이지 않으려 애쓰기보다는 우리를 발가벗긴 미국과 마주앉아 무언가를 얻어내는 편이 낫다는 말이다. 「韓美공조」란 동맹국에도 어느 정도의 전략적 지렛대를허용해 주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요즘 서울 일각에서는「라면 사재기」가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의 숫자가 뚝 떨어지는가 하면,전쟁발발가능성을 묻는 교포들의 전화가 잦다고 한다.이 해괴망측한 현상은 불가피한 것인가.한국은 이제라도「국적있는 강 경책」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기로에 선 한국 核정책을 지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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