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원 “산이 나를 좋아해 오르니 겸손과 행복 가져다 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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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거의 매주 지리산에 오르는 김상원(70)씨가 지난 달 18일 천왕봉에 400번째 등정한 후 표지석 옆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하산 길에 제석봉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인(67)과 함께 기념 플래카드를 펼쳐들고 있다.

“산을 자주 찾고 소중히 하면, 산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올해 일흔 살인 김상원 호남대 고문은 거의 매주 천왕봉(해발 1915m) 등 지리산에 오르며 산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김 고문은 지난 8일 오전 지리산 천왕봉 402회 등정 기록을 세웠다. 30여 년 동안 해외출장이나 세미나 같은 별다른 행사가 없으면 산에 올랐고 주로 지리산 천왕봉을 찾았다. 그는 천왕봉을 오를 때마다 지리산관리사무소 백무동 탐방지원센터의 출입자 기록부에 등정횟수를 써 넣고 정상에서 사진을 촬영해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보통 산이 좋아 산에 간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로 산이 나를 좋아해 자주 찾았다”고 말했다.

 그와 자주 동행하는 전남대 문영식(64·윤리교육)교수는 “김 고문처럼 천왕봉을 많이 등정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며 “산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그토록 자주 산을 가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산을 오르내리면서 늘 발에 걸리기 쉬운 돌과 나뭇가지를 치운다. 또 파헤쳐진 곳은 부근의 돌·흙 등을 가져다 메운다. 각종 형상의 바윗돌에 이름을 지어주기도 한다. 그가 작명한 ‘코뿔소 바위’ ‘거북바위’는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사 그대로 통한다.

 그는 1970년 전남 장흥우체국에 재직할 때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출장이 잦은 업무를 감당하기에 체력이 달렸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산악회원들과 함께 다녔지만, 가까운 산과 잘 아는 산은 혼자 올랐다. 또 차츰 전국의 유명 산을 찾았다. ‘민족 영산’으로 통하는 지리산의 천왕봉에 처음 오른 게 1975년 봄이었다.

 그 때부터 천왕봉에 설 때마다 욕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살아가기를 희망했다. 전남대 행정실로 자리를 옮긴 85년 이후에도 휴일이면 거의 빠짐없이 지리산으로 향했다.

 천왕봉 이외에 반야봉에 136회, 노고단에 280회 오르는 등 수 많은 봉우리를 거의 다 다녔다. 화엄사에서 출발해 노고단~되지령~임걸영~노루목~반야봉~삼도봉~토끼봉~형제봉~벽소령~세석산장~연하봉~장터목~제석평전~통천문~천왕봉~천왕샘~범계사~중산리로 이어지는 일주 코스를 12시간 30분 만에 종주해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산에 많이 다니는 사람도 보통 16~17시간 걸리는 거리다.

 97년 전남대 행정실장으로 정년 퇴직한 그는 요즘 호남대로 매일 출근해 학교재산관리 업무를 보지만 휴일은 등산이 일과다.

 그는 등산을 일삼아 하는 이유에 대해 “신체를 단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천왕봉을 등정하고 내려오는 길목에 제석평전에 이르러 융단같이 펼쳐진 초원 위에 누우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고 말한다.

 지리산관리사무소 백무동 탐방지원센터의 김명진(29)씨는 “김 할아버지는 입산 통제기간이 아니면 거의 매주 오시는 데다 산 사랑이 각별해 산악단체 회원들에게도 꽤 알려져 있다”며 “산과 더불어 건강한 삶을 꾸려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산이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 줬다”며 “3년 안으로 천왕봉 500번째 등정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 있는 산도 많이 정복했다. 일본 후지산(3776m)·북알프스산(3190m)과 말레이시아 키나바루산(4100m), 중국 황산(1873m),뉴질랜드 남섬 만년설산(1672m) 등에 올랐다. 

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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