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밖」에 맡겨둔 안보의식(송진혁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핵위기속의 국민은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다. 연휴에 놀러가면 안보불감증이라고 꾸지람을 듣고 미리 뭔가 좀 사두면 사재기나 하는 성숙되지 못한 시민이란 소리를 듣는다.
안보불감증이 아니면 안보민감증이 되기 쉬운데 안보에 민감하면서도 라면 따위를 미리 사두면 나쁘다는 것이다.
정세가 불안하다고 한국행을 꺼리는 해외바이어들에게 우리측은 연휴의 행락인파를 봐라,불안할게 없다고 설득한다는데 그러고 보면 연휴나들이도 나라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불감·과민 다 나쁘면
아무튼 북핵문제가 위기로 치닫자 보통사람들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이런 시절 집장만을 해도 괜찮은지,이사를 가야할지,증권에 넣었던 돈을 빼야할지 판단에 어렵고 확신이 안선다. 또 나아가 장차 정말 무슨 일이 터지면 피난을 가야할지 안가야 할지,피난을 간다면 어디로 가야할지 통 알 길이 없다. 앞으로도 북핵위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인데 그렇다면 국민이 겪는 이런 혼미상태로 계속 방치돼야 할까.
정부나 언론이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을 보면 안보불감증은 절대 나쁘고 안보과민증도 좋지 않으니 결국 「안보적정감」(이런 말이 성립될지는 모르지만)을 가지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국민이 안보적정감을 갖도록 할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 것인가.
문제의 북핵상황에 대해 우리 국민이 정보를 얻고 감을 잡고 나름대로 판단기준을 얻는 원선은 압도적으로 외신보도와 외국지도자들이 발언이다. 북한을 상대하고 북핵의 가장 직접적 당사자가 되는 것은 우리인데 우리 문제를 외국보도와 외국정부한테서 정보를 듣고 설명듣고 감을 잡게 되어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와서 정부는 국민의 안보불감증을 걱정하지만 그동안 정부가 국민의 안보의식을 바람직한 방향과 수준에서 형성되도록 노력한게 뭐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안보문제야말로 국론의 결집과 국민의 결속이 가장 중요하다. 또 안보문제처럼 정부가 전적인 책임을 지고 배타적으로 정책과 정보를 관리하는 분야도 없다.
그렇다면 가장 높은 「망루」에서 안보상황을 항상 살피고 있는 정부가 밑에 있는 국민에게 평소 수시로 필요한 신호를 보내고,국민들은 그 신호에 따라 일정한 안보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 정상이다.
○답답한 정부의 침묵
과거 군사정권에서는 다른 정치적 의도로 너무 과장된 신호를 보내는 바람에 신용을 잃었는데 문민정부 들어서는 신호보내기를 너무 소홀히 한게 아닌가. 게다가 그동안 정부의 신호가 갈팡질팡 혼선을 빚는 바람에 신용이 떨어진 것은 아닌가.
국민이 「안보적정감」을 갖도록 하자면 신호를 제대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가령 북한이 동해에서 「노동1호」 미사일 실험을 했다고 미·일정부는 발표를 하고 현지 언론들은 법석을 떨었지만 우리 당국의 설명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노동1호 정도는 괜찮다든가,우리에게도 대응수단이 있다든가 무슨 말이 있어야 할게 아닌가. 노동1호뿐 아니라 대포동1,2호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또 요즘 쏟아지고 있는 각종 전쟁시나리오 중에는 4주만에 부산이 함락될 것이라는 끔찍한 비관론까지 있었는데 정부로서는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그런 시나리오는 말이 안된다,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얘기가 안되니 국민은 현혹되지 마사오라는 얘기쯤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입을 두고 어디에 쓸 작정인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망루서 신호 보내야
그러면서도 지난주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가며 「국민의 환상적 안보의식」을 걱정했다. 국민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안보문제에 관한 국민의 의식과 판단을 외국정부나 외국언론에 방치하는 상황을 더 두고 보아서는 안된다. 우리에겐 정보위성도 없고,정보능력에도 한계가 있지만 정부가 국민의 안보의식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알릴 것은 알리고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기본적 임무다.
망루에 있는 정부가 필요한 신호를 보내지는 않으면서 국민에게 「안보적정감」만 주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수석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