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불감증의 책임/한남규 편집부국장(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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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베스트셀러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일본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식인을 대상 독자로 하고 있는 일 월간 종합잡지 『문예춘추』 6월호에 이 소설에 관한 얘기가 실렸다.
필자는 산경신문의 서울지국장 구로다 가쓰히로(흑전승홍)씨.
그는 한국이 인구가 일본의 3분의 1이고 독서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을 감안하면 이 소설의 1년새 판매부수 2백만은 일본의 1천만권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계산했다.
그리고 한국의 독서인구가 주로 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층이란 점을 지적했다.
이 소설의 인기배경과 작품의 파급효과가 각별한 것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무작정 북핵 낙관
소설은 한국과 북한이 핵무기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일본의 한반도 재침략에 대해 핵미사일로 응징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구로다씨는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위기감·긴박감이 희박한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같은 소설이 대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현실을 보고는 「과연 그렇구나」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가 일본 지식인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한국의 북핵관련 안보불감증 현상의 밑바닥에는,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핵주권론」 「민족지상주의」가 깔려있다는 우려인 것 같다. 다시말해 한국사람들은 북핵개발에 대해 단순히 무관심하게 아니라 민족공동체적 차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게 구로다씨의 시각이다.
그러나 과연 북핵문제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불감증 현상이 북한에 대해 동족정서,미국·일본에 대한 불신과 경계 때문일까. 북핵에 대한 무관심과 상대적인 유화자세가 과연 통일 때까지를 계산에 넣은 원려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래서 국제사회가 한반도 긴장을 계산해가면서 대북제재를 검토하고 있는 때에 우리 행락인파는 현충일 연휴의 고속도로를 마비시켰는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게 아닌 것 같다. 이같은 기인한 사회현상의 배경은 민족과 통일을 생각한 심화도 아니고 핵패권국에 대한 줏대높은 반발도 아니다. 북의 핵보유와 대북제제가 각각 불러올 사태에 대한 안이한 사고와 정보 부족에서 비롯된 천진스런 낙관일 따름이다.
○국민 정보부족탓
책임은 정부에 귀착된다. 안보에 관한 정부의 입장이 어제·오늘따라 다르고 정부 부처마다 틀리니 정부가 하는 말을 경청하는게 오히려 이상한 노릇이라면 과언일까.
오래전 일을 들출 필요도 없다. 가령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기간중을 돌아보자. 총리주재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는 국민들의 안보불감증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러시아에서는 「북한 움직임을 1백% 장악,유사시 대처할 충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불감의 원인을 제공했다.
지미 카터가 미 백악관 주인이 된후 어느날 그의 국가안보특별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상황실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핵전쟁이 발발했다고 가상하고 대통령 대신 브레진스키 자신을 긴급 대피시키라는 주문이었다.
규정상 비상벨이 울리면 적의 미사일이 도착하기 전에 백악관의 헬리콥터는 즉각 대통령을 태워 워싱턴 교외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이동하게 돼있었다.
대통령은 공군 1호기에 탑승,공중에서 전쟁을 지휘하는 것이다.
헬리콥터 이륙은 3분이 지연됐고,합참의장과의 기상통화를 명령받은 승무원은 이미 불바다가 됐을 백악관의 교환대를 호출했고,앤드루스 공군기지에는 공군 1호기가 준비돼 있지 않았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브레진스키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미비점을 보완토록 지시했다.
○정부 그간 뭐했나
과거 군사정부가 정권유지차원에서 안보 불안을 조성했던 것처럼 공연히 국민을 공포분위기에 빠뜨리자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의 안보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관련해 다른나라 의회와 정당이 대북제재를 놓고 찬반논쟁을 벌여온 동안 임시국회나 이렇다할 상임위도 열지 않고 함구로 일관해온 정당들의 「복지부동」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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