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너에겐 특별한 맛과 멋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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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上부터 시계방향으로) 영광굴비, 죽방멸치, 안성배, 청송 사과, 함평 와인, 하동 명인 녹차, 강화 매화마름 쌀, 횡성 한우

이코노미스트명품 특산품을 개발하라! FTA시대를 맞은 농어업 지역 지자체의 절대 과제다. 외국 농수산물과 경쟁하려면 이 길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250만원짜리 굴비에 100만원짜리 멸치가 있다. 이들은 지자체 경제를 살려 번영의 문을 열어줄 키를 쥐고 있다.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성공한 명품 특산물에 대한 현장 이해가 필수다.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지역경제학회의 도움을 받아 명품 특산품을 찾아 나섰다.


“다른 지역에서는 소를 팔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지요. 소 축산농가가 계속 늘고 있습니다.”

강원도 횡성의 한 축산농민의 말이다. 횡성은 ‘한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제 횡성은 ‘한우의 본가’로 불릴 만하다.

전국적으로 ‘한우’를 전면에 내세우는 지자체는 많아도 횡성만큼 한우를 생각나게 하는 곳은 없다. 소똥도 없고 냄새도 없는 깨끗한 축사, 소의 건강 상태에 따라 한 끼 한 끼를 주는 관리시스템, ‘짝퉁’ 브랜드가 넘쳐날 정도로 키운 브랜드 파워.

지방 특산품은 하기에 따라 지역을 살리는 ‘경제의 기둥’이 되기도 한다. 생산·판매·유통·마케팅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관건이다.

차의 시배지 하동도 그렇다. 지난 수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보성에 빼앗긴 ‘국산차의 대표’ 자리를 되찾고 있다. 마케팅이 한몫을 했다. 하동은 국내 최다·최고인 ‘차의 명인’을 앞세워 ‘명품 녹차’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특산품은 명품을 지향한다. 명품 특산품의 값은 놀랍다. 250만원짜리 굴비, 130만원짜리 송이버섯, 100만원짜리 멸치, 50만원짜리 차, 한 개 2만원짜리 배와 사과….

문제는 어떻게 이런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 내느냐다. 성공한 명품들의 성공비결이 궁금하다. 영광, 함평, 봉화, 하동, 사천, 횡성…. 현장에서 본 명품 특산물은 여러 가지로 놀라움을 준다. 영광에서 본 250만원짜리 35㎝급 최고가 굴비는 명품의 위용을 자랑한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이들 고가 명품이 순식간에 시장에서 팔려 나간다는 점이다.

명품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가격 차이다. ‘영광 굴비’는 특산 명품이지만 모두가 250만원인 것은 아니다. 싼 것은 10만~20만원짜리도 있다. 재배버섯 중 가장 비싼 참송이버섯도 마찬가지.

선물용 고가품이 1㎏에 25만원 정도지만 최고급은 두 배가 넘는 60만원이다. 하나에 2만원이나 하는 안성 배나 청송 사과도 싼 것은 몇 천원 수준이다. 50만원짜리 하동 녹차 역시 같은 장인이 만들었다 해도 1만8000원짜리가 있다.

이 같은 차이는 상품의 질 차이에서 비롯된다. 2만원짜리 안성 배를 보자. 크기, 당도, 경도에서 다른 배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나에 1㎏이 넘는 배는 크기가 어린아이 머리만 하다. 사천 죽방멸치도 마찬가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가지런히 들어앉은 은빛 가득한 멸치는 보기에도 좋지만 맛도 탁월하다.

상품의 ‘질’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 50만원짜리 하동 녹차. 국내 4명뿐인 차명인 중에서도 경험이나 연배가 특출 난 ‘명인 중 명인’이 봄철 차나무 잎이 나오자마자 지리산 곳곳을 돌며 제일 먼저 딴 것을 정성껏 덖어서 만든다.

이게 다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희소성’이다. 아무리 비싸게 줘도 살 수 없는 것. 그것이 ‘명품 특산품 중 명품’인 것이다. 최고급 굴비는 6만 마리 중 한 마리가 나온다. 6만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250만원짜리가 될 수 있다. 1년에 나오는 물량이 기껏 수십 세트. 세계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에서만 산다는 풀 매화마름. 이 풀과 함께 큰 쌀 ‘강화도 매화마름 쌀’은 연간 생산량이 30가마다.

소량 생산임에도 수요는 엄청나다. 죽방멸치. 비교적 값이 싼 작은 멸치도 2㎏ 박스당 8만원이다. 지금보다 생산이 더 된다면 값이 싸질까? 아니다. 생산이 웬만큼 는다 해도 수요를 충족시킬 수는 없다. 영광굴비, 참송이버섯, 매화마름쌀 모두 마찬가지. 나오는 대로 즉각 팔린다.

이런 상황이니 몇몇은 주문생산을 한다. 참송이버섯이 대표적이다. 연간 생산량 30t 중 최고급품만 뽑아내는 특급 버섯은 반드시 미리 주문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문제도 많다. ‘값을 하는 제품’들이기는 해도 거품이 끼었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 산지가와 소비자가의 격차가 너무 큰 것이다. 유통 마진을 줄이는 노력을 산지에서 스스로 해야 할 때다.

더 중요한 것은 ‘짝퉁’이다. 영광은 굴비에 간이 배게 하는 ‘섶간’ 과정을 중시한다. “비록 참조기라 해도, 크기가 같다 해도 영광굴비는 다르다”는 것이 현지 주장이다. 그런데 현지에서는 유통되는 영광굴비의 30%만이 ‘진짜’라고 본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속아 사는 것이다.

전태곤 죽방염협회장은 아예 “‘짝퉁’ 죽방멸치를 다룰 것”을 취재 협조의 전제로 달았다. 전 회장은 “죽방멸치는 사천(또는 삼천포)과 남해에서만 난다”며 “시장에서 거래되는 다른 지역 이름의 죽방멸치는 모두 가짜”라고 강조했다.

결국 생산량을 늘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가능하다. 연천의 참송이버섯은 비교적 쉬운 사례다. 시설투자를 통해 생산을 늘릴 수 있다. 안성은 보다 엄격한 경지관리를 통해 2만원짜리 고가 배를 더 생산할 계획이다.

횡성은 브랜드 마케팅을 강화해 브랜드 파워를 키우고 한우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특산품, 그것도 명품은 FTA를 맞은 국내 농가의 살길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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