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통폐합, 국민부터 생각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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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12면

‘취재 지원 선진화 방안’을 둘러싼 정부와 기자들의 갈등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기자들은 기자실 통폐합이 취재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에 통합 브리핑룸에서 열리는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기자실 통폐합 문제와 관련한 총리 훈령안 가운데 ‘사실상 사전검열’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제11조(사전협의)와 제12조(면담장소 제한)를 삭제했다. 그러나 기자실 통폐합 원칙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왜 이렇게 정부가 완강할까? 국정홍보처는 기사의 획일성과 기자실의 폐쇄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선진국에는 우리 같은 기자실이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신문기사가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불만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정부 측 설명에도 일리가 있다. 기자들이 출퇴근하듯 고정된 출입처에 상주하고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기사를 작성해 언론매체마다 대동소이하게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서 담합한다’는 노 대통령의 표현이 과장됐을지언정 ‘중계성 보도’는 일정 부분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정만으로 기자실을 통폐합할 충분한 이유가 될까? 기자실 체제의 사회적 효용성을 행정편의적 시각에서만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기자가 정부를 취재하는 것은 ‘기자와 정부의 양자관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반 국민을 위한 삼자관계’다. 기자들의 취재 자유는 ‘정부가 감추는 정보에 궁금해하는 국민의 알권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서 알권리는 정보에 대한 접근·수집·처리의 자유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여론 형성에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고 수집·처리함에 있어서 국가권력의 방해를 받지 않는 소극적인 의미(자유권적 성질)는 물론 방해를 제거하도록 요구하는 적극적인 의미(청구권적 성질)를 갖고 있다(헌법재판소 1991.5.13. 선고 90헌마133 결정 등). 알권리는 헌법 제21조에 규정된 언론·출판의 자유, 즉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며 세계인권선언 제19조에도 명시적으로 나와 있다.

19일 정부 중앙청사 별관에서 교육부·외교부 등 6개 부처의 통합 브리핑룸 공사가 한창이다. 최승식 기자

따라서 ‘취재 지원’이 되기 위해서는 기자들의 취재 반경을 늘려주는, 국민의 알권리를 확충하는 쪽이어야 한다. 정부의 부처별 업무 특성을 무시한 채 기자실 공간을 통합 브리핑룸으로 통폐합하고 환경을 좋게 바꾸는 것이 결코 ‘취재 지원’이 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각국의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냐 내각제냐도 중요하지만 지방분권적 연방국가인지, 중앙집권적 단일국가인지가 매우 중요하다. 취재 방식과 알권리 구현 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처럼 지방자치단체나 독립적 행정기구에 권한이 분산되어 있으면 기자들이 굳이 중앙정부로 몰릴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한국은 중앙정부에 권한이 독점되어 있다. ‘권한과 정보의 독과점 사업자’라고 할 만하다. ‘선진화 방안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은 연방법에서 따로 정하지 않는 한, 개별 주(state)가 인·허가권과 재판권 등을 행사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행정부처가 날로 비대해지지만 정보공개법은 크게 미흡한 수준이다. ‘회의공개법’은 아예 없다. 정부기관의 내부 고발자가 의지할 만한 법적 방패도 사실상 없다. ‘정부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더 필요한 이유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미국이나 다른 대통령제 국가에 없는 법률안 제안권까지 갖고 있다. 대부분 입법발의가 행정부처 주도로 추진된다. 이런 현실은 한국 기자들이 기존의 정부 출입처에 상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더구나 기자실 체제는 과거 정부가 ‘출입기자대책’으로 스스로 마련해준 것이 아닌가. 요컨대 기자실은 폐해에 비해 효용성이 아직 훨씬 크다.
정부가 언론사의 정보 수집·처리·전달 과정에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정보 수집 단계를 차단하는 기자실 통폐합 조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통합 브리핑룸은 정부가 예측하는 것과 달리 획일적·타성적 기사를 양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는 ‘선진화 방안’에 더 이상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 현실에 부합하는 ‘적정화 방안’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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