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규제가 만들어낸 농어촌 '황당 비즈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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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보조금과 규제가 비뚤어진 비즈니스 대상으로 둔갑하고 있다. 전북에서 닭과 돼지를 키우는 김모(48)씨. 그는 축산을 하면서도 논농사를 짓는다고 허위 신고를 했다. 논농사 농가에 지급되는 쌀 소득보전 고정 직불금을 노린 것이다. 전북도청 측은 도내 논 3만 필지에서 이런 허위 신고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경남 창녕에선 한 마을 이장이 마을 내 휴경지와 타인의 경작지에서 자신이 쌀농사를 짓는 것처럼 서류를 꾸미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그가 총 15필지에서 챙긴 쌀 소득보전 직불금은 180여만원이었다.

직불금을 노리고 논농사를 짓지 않던 사람들까지 속속 논농사에 뛰어들고 있다.

농림부에 따르면 2005년 100만7000㏊였던 신청 면적은 올해 102만6000㏊로 늘었다. 신청 농가 수도 같은 기간 103만3000호에서 107만 호로 증가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의거해 2005년 실시된 직불제는 정부가 쌀 목표 가격과 산지 쌀 값이 차이가 날 경우 그 차액의 85%를 돈으로 지불해 주는 제도다. ㏊당 70만원은 무조건 지급되고, 그 나머지는 산지 쌀 값에 따라 달라진다. 2년 동안 무려 2조7000억원이 지급됐다. 올해 분까지 합하면 4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실제 농사를 짓는지, 안 짓는지를 마을 이장의 확인에 의존하다 보니 마을 이장과 짜고 부재 지주가 농사를 짓는다고 속이면 단속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영세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이 제도가 부유한 농가에만 혜택이 돌아가기도 한다. 실제로 수백㏊의 농지 소유주가 1억원 이상의 직불금을 수령한 경우도 8건이나 된다. 부재 지주가 직불금을 받는 경우도 흔하다.

이 때문에 최근 감사원은 직불금 부당 청구 관련 감사를 벌였지만 그 결과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이와 관련, 감사원 측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감사 결과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해양부가 한.일 어업협정 이후 추진하고 있는 근해 어선 감축사업도 마찬가지다. 해양부는 올해 350억원을 들여 75척의 근해 어선을 감척하기로 했다.

폐업 어업인에게 배 값과 3년치 수익의 절반을 주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어촌에서는 낡은 폐선에까지 억대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다. 감척 대상이 되면 1인당 수령하는 돈은 약 4억원. 2004년 감척사업에서는 수익에 대한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돈을 줬지만 올해는 업종 평균 수익을 기준으로 수익금을 계산한다. 이 때문에 신청자가 쇄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10일까지 감척 신청자가 582척에 달해 경쟁률이 8 대 1에 육박했다.

농림부와 해양부의 직불금.감척사업이 새로운 이권으로 변질되자 정부는 뒤늦게 개선안 마련에 착수했다. 농림부는 최근 공청회를 열어 농업인의 경우 8㏊까지, 영농조합이나 법인의 경우 50㏊까지만 직불금을 주는 '직불금 상한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농업 외 소득이 연 3500만원 이상이거나 부재 지주는 직불금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해양부도 감척 대상 우선순위를 정했다. 어족 남획을 줄이기 위해 외국수역 조업 허가 보유 어선, 어업 허가를 많이 보유한 어선, 어선 규모가 큰 어선, 출어 일수가 많은 어선, 선령이 많은 어선 순으로 감척하기로 했다. 현재 정액제인 수익금 산정 방식도 최저가격 낙찰제로 바꿀 방침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서세욱 분석관은 "자기부담금이 전혀 없는 '퍼주기식' 직불금 때문에 오히려 농어업 구조 개편이 차질을 빚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예산만 낭비하는 기존의 직불금.감척 방식을 시급히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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