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국내정치에 가려진 지정학의 중요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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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정학이란 무엇인가
콜린 플린트 지음,
한국지정학연구회 옮김,
도서출판 길,
352쪽, 1만8000원

대통령 선거를 앞둔 국내 정치는 자칫 왜소화하기 쉽다. 마치 몇몇 정치인의 언변과 행동이 정치의 전부로 여겨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신문 정치면은 정치인의 말로 가득 차고, 먹고 사느라 바쁜 생활인들은 ‘아무개가 어떻고’ 하는 식의 인물평을 정치의 핵심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국가라는 큰 틀을 놓치곤 한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역학관계, 북방한계선(NLL)과 같은 영토 문제 등 보다 큰 정치 이슈들에 대한 관심이 엷어진다는 얘기다. 사실 이런 문제는 국가로선 중요하지만, 개인에겐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치는 자꾸 개인화되고 의인화되는지도 모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정학은 국가가 주체가 되는 정치를 다룬다. 지정학은 흔히 지리학과 정치학의 혼합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상당히 복잡한 학문이다. 국제정치를 공간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틀인가 하면, 영토 경쟁을 합리화시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19~20세기엔 국가 권력의 대외적 팽창을 위한 국가주의적 학문이었지만 지금은 세계화 속에서 다양한 정치 참여자들의 행동을 분석하는 학문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정학의 기본 단위는 물론 국가다. 국경·자원·이주민·군사 기지 등을 둘러싼 국가 사이의 갈등이나 역학관계가 주요 연구 대상이다. 모두 주어진 지리적 공간을 변수로 한 정치 현상들이다. 지은이는 ‘히포테티카’라는 가상 국가를 설정해 지정학적 분석의 시범을 보이지만 굳이 멀리 갈 것 없다. 한반도야말로 손꼽히는 지정학적 공간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강대국의 힘겨루기 탓에 한반도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살기 어렵고 위험한 공간’이 된 지 오래다. 번역을 나눠 맡은 8명의 정치학 교수들은 한반도에 대한 지정학적 인식을 갖춰야 다양한 차원의 정치행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지정학 입문 교과서다. 지은이는 이렇다 할 주장을 담지 않은 채 독자들에게 지정학적 시각을 지니도록 권유한다. 다소 딱딱하지만 정치가 국내에서만 복닥거리는 게 아니라는 점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미덕은 있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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