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코리아' 비상구는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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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대한 암벽 사이를 위태롭게 오르는 모습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우리 모습과 닮았다. 두 나라 사이를 헤치고 넓은 하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원천기술’이라는 튼튼한 자일과 국가적 의지가 필요하다. 북한산 경찰산악구조대장 김창곤 경사(39)가 인수봉 설교벽 암봉을 오르고 있다. [사진=오종택·김태성 기자]

#1.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한국 조선산업의 전진기지다. 그러나 현대 근로자들이 무더위, 비바람과 싸우며 척당 1억 달러 안팎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건조할 때마다 배 값의 10%가량이 프랑스의 가스회사 GTT로 빠져나간다. 저장 탱크를 섭씨 영하 163도까지 낮춰 LNG를 액체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GTT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체는 지금까지 110여 척의 LNG선을 건조했으니, GTT는 앉아서 1조원 이상의 로열티를 챙겼다.

#2. 동화약품은 올 7월 미국 P&G의 제약 부문 계열사인 P&GP에 골다공증 치료제 후보물질 'DW1350' 관련 기술을 수출하기로 계약했다. 기술수출료는 5억1100만 달러(약 47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제약 업계 최대의 기술수출 액수다. 임상시험을 거쳐 제품이 출시되면 동화약품은 로열티를 더 챙길 수 있다.

저비용이 무기인 중국과 하이테크로 무장한 일본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코리아'의 비상구는 어디인가. 산업전문가들은 원천기술에서 그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산업은 '기술 도입→생산성 향상→시장 진입→경쟁력 확보'라는 패러다임에 의존해 왔지만, 이제 한 단계 도약하려면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원천기술은 사소해 보이더라도 '원천'이라는 이름 하나로 엄청난 대접을 받는다. 기술을 사서 써야 하는 측이 '날강도'라는 불평을 할 정도다. 한국 휴대전화 수출이 늘수록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미국 퀄컴을 살찌게 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모방과 개량' 전략에서 벗어나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리기란 쉽지 않다. 조선에 버금가는 경쟁력을 갖췄다는 반도체도 장비의 80% 이상을 미국.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기술 무역수지는 적자 폭이 매년 커지고 있다.

특히 원천기술을 많이 갖고 있는 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 등 5개국에 대한 기술 무역수지 적자 폭은 2001년 18억9300만 달러에서 2005년 34억2300만 달러로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민철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주력산업은 생산기술로 세계 1~5위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막대한 외화를 로열티로 지급하고 있다"며 "원천기술을 최대한 확보해야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재우·이현상 기자
사진=오종택·김태성 기자

◆샌드위치 코리아=고효율의 일본과 저비용의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여 꼼짝 못하게 돼 가는 한국의 현실을 담은 표현. 올해 초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리나라 상황을 샌드위치에 비유한 이후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긴박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원천기술=제품이나 상품 개발에 필요한 핵심적 기술 지식이다. ▶다른 기술을 개발하는 데 많이 활용되고 ▶기초과학과 연계돼 있으며 ▶퀄컴의 CDMA 기술처럼 국제표준이 되는 기술을 일컫는다. 원천기술이 있으면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누릴 수 있고 지속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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