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국민은행 김기홍 수석부행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의 미래 성장동력을 기존의 사업에서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자금이 은행 예금에서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주식형 펀드로 썰물 빠지듯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해외 진출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증권·보험사 인수를 통해 비은행 부문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금에서 CMA·펀드로의 이동은 심각할 정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은행의 요구불예금과 저축예금은 각각 4조9000억원, 8조6000억원 감소했다. 같은 기간 시중은행의 예금 증가 규모는 3조3000억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증가액(16조7000억원)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반면 증권사의 올 상반기 CMA 증가액은 10조7720억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증가액(5조8900억원)의 두 배가량 된다.
은행들이 투자은행(IB)을 육성하기 위해 증권사 인수에 나서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민은행과 SC제일은행은 한누리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기업은행은 인수할 증권사를 찾고 있다. 우리금융은 최근 한미캐피탈을 인수한 데 이어 LIG생명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보험=정부가 올해 중점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보험업법 개정 방안이 확정되면 ‘보험 빅뱅’도 불가피하다. 보험업계는 ▶어슈어뱅킹(보험사에서 예금상품을 파는 방식) 허용 ▶지급결제 허용▶생명·손해보험의 장벽 철폐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보험사가 지급결제 업무를 하게 되면 은행 계좌처럼 자금 이체나 지로업무를 보험사 계좌를 통해 할 수 있게 돼 은행 영역을 상당 부분 잠식할 것으로 보인다.
M&A도 벌써 불붙었다. 보험업계는 자산운용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하는 방식으로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대한생명은 계열사인 한화증권 소유의 한화투신운용 지분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이다. 메리츠화재도 금융그룹 내 자산운용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내년 4월 자산운용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중소형 보험사의 매각 움직임도 줄을 잇고 있다. 대주그룹 계열 대한화재는 공식적으로 매각을 추진 중이다. 조선업 진출 자금 마련 때문이란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온라인 자동차보험 업체 다음다이렉트도 M&A시장에 나와 있다. 업계에서는 최대주주(지분율 50.1%)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인터넷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보험사를 매각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증권= 자통법의 최대 수혜자는 ‘투자’를 주로 하는 증권사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경쟁은 오히려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은 증권사는 저마다 덩치 불리기 전략 마련에 한창이다.
포문을 연 곳은 서울증권이다. 경영권을 넘겨받은 유진기업은 “M&A를 통해 덩치를 키워나가겠다”고 발표했다. 농협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NH투자증권도 대형사로 성장하기 위해 향후 다른 증권사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대주주인 CJ의 지주회사 전환에 따라 매물로 거론되던 CJ투자증권도 김홍창 신임 사장이 나서 “매각이 아니라 성장을 위해 다른 증권사를 인수하겠다”고 강조했다.우리투자증권 박종수 사장은 “중소형 증권사가 아니라 대형사 인수를 해야 하지 않겠나”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됐다. 이에 따라 매물 가능성이 큰 증권사의 몸값이 급등하고 있다.
덩치만 키운다고 곧 세계 경쟁력이 따라 오는 것은 아니다. 덩치는 기본이요, 선진 시스템과 인재는 필수다. 굿모닝신한증권 박선호 연구원은 “세계에 통하는 경쟁력을 갖추려면 우선 덩치를 키운 뒤 시스템을 선진화해야 한다” 고 말했다.
김창규·염태정·고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