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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압둘 카디르 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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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80년 8월 15일 지하 핵실험에 성공해 핵 보유국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계획은 소설 주인공인 천재 물리학자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좌절됐다.

주인공의 실제 모델은 이휘소(李輝昭)박사다. 재미 이론물리학자였던 李박사는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했다. 당연히 핵개발과 무관하며,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럼에도 李박사의 이름을 빌려 핵개발을 꿈꾼 소설이 93년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그만큼 핵강국에의 열망이 강한 탓일 것이다. 일본이 플루토늄을 대량 수입하던 해다.

김진명의 상상이 실현된 곳은 파키스탄이다. 주인공은 李박사와 같은 해(1935년)에 태어난 금속공학자 압둘 카디르 칸(A Q Kahn). 칸은 아랍권에서 '이슬람 핵폭탄의 아버지'로 통하며, 파키스탄에선 국부(國父)로 숭앙받는다.

칸이 혼자 힘으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70년대 초 네덜란드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할 당시 우라늄농축연구소(URENCO)에 있던 비밀문서와 설계도를 모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소는 유럽 국가들이 발전용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해 만든 곳인데, 가스원심분리 기술을 이용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 수준으로 우라늄을 농축했다. 칸은 75년 말 갑자기 파키스탄으로 귀국해 핵연구소 소장이 됐다. 네덜란드는 83년 핵심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궐석재판에서 칸에게 4년형을 선고했다.

87년 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7년 만에 핵폭탄을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모든 조사와 실험과 설비를 한꺼번에 추진함으로써 가능했다고 자랑했다. 물론 URENCO 방식이다. 당시 이슬라마바드 시민들은 그의 집 앞에 꽃을 바쳤으며, 일부 젊은이들은 그를 칭송하는 혈서를 쓰기도 했다.

이후 제3세계의 핵개발 과정에서 칸은 빠지지 않았다. 90년대엔 북한에 우라늄 농축기술을 제공하고 미사일 기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칸이 핵기술 밀거래 관련 조사를 받고 가택연금됐다. 리비아가 핵포기를 선언하고 사찰을 받는 과정에서 국제 핵(核) 암시장이 드러났고, 그 가운데 칸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궁화꽃을 피운 파키스탄의 영웅이 위험한 핵 밀매꾼으로 서방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