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러시아 韓人돕기협회장 이광규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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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아시아지역에 거주하는 한인(高麗人)들은 우리가 생각하고있는 이상으로 매우 어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천신만고끝에 이룩해놓은 이국땅의 생활터전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이들은 오도가도 못할 처지에 놓인 것입니다.우리 정부는 물론이고 국민들도 동포애 차원에서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어야 합니다.』 지난 1월 뜻있는 인사들과 함께 조직한「러시아한인돕기모임」의 회장을 맡고있는 李光奎교수(62.서울대 인류학과)는 金泳三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을 계기로 이들의 어려운 사정이 우리나라에 상세히 알려지고양국 정부의 지원방안도 거론하 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 고려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새로운 정착지를 구하는것이라고 李교수는 단언하고 있다.일부에서는 고려인들이 그동안 현지에서 잘 정착해 살아왔는데 구태여 다른 정착지를 구해 이주할 필요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는 피상적인 인식에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려인들 상당수가 중앙아시아를 떠나 極東 연해주로 이주했으며 지금도 연해주에 약간의 연고만이라도 있으면 이주하려는분위기라고 李교수는 전한다.
그러나 막상 연해주로 건너온 1만여명의 고려인들은 마땅한 生業도 없고 그렇다고 어디에 기댈 언덕도 없는 형편이라 어려움이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계기로 고려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까.
『학문적인 목적으로 중앙아시아와 연해주를 돌아보면서 우리 동포들이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더이상 해외동포들에게 무관심해서는 안되겠다는 각오를 갖게 된 것이지요.특히 연해주와 중앙아시아를 오가며 新韓人村 건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고려인들을 보고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왜 그곳을 떠나려고 합니까.
『전체 고려인의 75%정도인 35만여명이 우즈베크와 카자흐에밀집되어 살고 있습니다.蘇聯이 붕괴되고 각 구성 공화국이 독립하면서 고려인들은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소수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독립을 계기로 각 나라에서는 민족주의적 분위기가 생활전반에 확산됐고 고려인들은 거센 추방 압력에 시달리고 있습니다.수십년을 지켜오던 생활터전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설땅이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 고려인들의 느낌입니다.』 李교수가 직접 보고 들은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현실은 그야말로 孤立無援 그 자체다.
반평생을 러시아語로 대학에서 강의해온 고려인교수에게『이제 우리나라는 독립국가이니 카자흐語로 강의하라.그렇지 못하면 강단에서 내려오라』는 지시를 내린다.이런 식으로 쫓겨난 교수가 한두명이 아니란다.
고려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단농장과 학교에서 고려인간부들이 줄줄이 쫓겨나고 있다.
또 이 지역은 전통적인 회교권이다.공산주의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회교는 이제 고려인들에게「코란과 칼」중에서 선택을 강요할태세다.이런 궁지에 몰린 고려인들이「더이상 버틸 수가 없다」는판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연해주의 신 한인촌 건설이다.차라리 동족끼리 모여사는 것이 낫다는 인식에서다.
-모임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계획입니까.
『우선 연해주에 이주해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의식주문제를 다소나마 도와주는 일에서부터 출발하려고 합니다.현지에 가보니 실제로 입을 옷조차 넉넉하지 않아 고생하는 동포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1차로 헌옷모으기운동을 곧 시작하려 합니다 .
캠페인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고려인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봅니다.그리고 우리나라의 각 지방자치단체와 고려인들이 단체별로 자매결연사업도 벌여 민간차원의 지원이 지속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연해주에 새 정착촌이 무리없이 건설되리라 봅니까. 『러시아정부에서는 고려인들의 집단촌 건설을 바라고 있는 입장입니다.이곳에는 中國의 불법입국자들이 몰려들고 日本의 자본이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러시아정부는 이 두나라와의 舊怨때문에 달갑지않게 여기고 있지요.
고려인들은 러시아정부로부터 강제이주에 대한 사과도 받아낸 상황이고 게다가 지금까지 주위 민족과 잘 융화하고 근면한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얻어놓았기 때문에 아주 좋은 여건입니다.러시아정부는 고려인의 정착을 위해 25헥타르의 부지도 제 공하겠다는 의사를 내놓고 있습니다.다만 돈이 없는 러시아정부가 더이상의 경제적인 지원을 할 수없다는 것이 한계지요.』 -우리가 그들의정착을 위해 도와줄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기업도 관심가져야 『현재로서는 우리 정부가 나서서 노골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한국기업들이 현지에 진출해 이들의 노동력을 활용하면서 생계를제공하는 妙를 생각해 볼 수있습니다.실제로 이곳 진출을 위해 상당한 진척을 이뤄놓은 기업도 서너곳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李교수는 20여년간 해외교포문제를 연구하면서『在日한국인』『在美한국인』『在蘇한인』등의 관련 저서를 냈고『在中한인』을 곧 발간할 예정으로 있다.교포문제에 관심이 많은 만큼 그는 할말도 많다.
『러시아.중국.미국등 교포사회에서는 이미 정신적인 남북통일이급속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 무한한 역량과 자원을 활용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습니다.안타까운 일입니다.우리는 그동안 해외동포들에게 너무나 포용력이 부족했습니다.이제는 그들을 보는 시각을 바꿔야할 때가 된 것같습니다.
교포들 중에는 고난스런 한 시대의 피해자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金대통령 訪러 기대 李교수는 정부차원에서도 교포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심지어 북한에서조차 두고 있는 교포문제 전담기관이 우리 정부에는 없다는 사실이 인식의 현주소가 아니냐는 그의 지적이다.僑民廳을 하루속히 둬야 한다는 지론이다 .
『연해주 고려인 정착촌이 마련되면 북한 伐木工들도 그곳에 정착할 수있을 겁니다.그들을 한두명 더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고려인 집단촌이 있다면 그들은 그곳에 정착하기를 더 원할 겁니다.50여만명에 달하는 고려 인들이 최종적으로 의지할 곳은 조국과 동포들뿐입니다.이번 金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은 고려인들에겐 큰 희망이자 기회입니다.고려인들의 새로운정착지에 관해 어떤 형태로든 건설적인 메시지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李元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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