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ℓ 냉장고 채우기 94,370원/어느 중산층 주부의 계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참외·수박도 제대로 못먹는데 과연 나는 중산층인가”/한달 과일비 식비예산의 40%/농수산물 유통구조 문제 “실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주부 서모씨(31·서울 옥인동)는 27일 효자동 통인시장으로 장을 보러나갔다가 무거운 기분으로 귀가했다. 과일 하나 사는데 식은땀을 흘려야 하는 자신이 과연 중산층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외 하나에 1천5백원,수박이 1만2천원. 요즘 출하된 것이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나온 것이고 철이 아닌 과일을 먹으려면 그만한 값을 치러야 한다해도 지나치게 비싸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금싸라기」라는 상표가 붙어있는 참외는 정말 금으로 만든게 아닌가 싶어 요리조리 살폈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연 서씨는 다시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낭비하며 생활한 것도 아닌데 냉장고안에는 반찬그릇들 말고는 이렇다하게 먹을 것이 없었다.
서씨는 냉장고를 그럴싸하게 채우는데 과연 얼마나 들까하고 손에 계산기를 들었다. 서씨의 냉자아고는 4백40ℓ. 먼저 맨 아래 과일칸. 참외 3개,사과 3개,토마토 5개,딸기 1㎏,수박 1개를 합쳐 냉장고안의 과일은 모두 2만4천9백원이다.
다음은 야채. 야채서랍속에 양파 8개,파 한단,당근 3개,호박 1개,오이 5개,시금치 한다발과 위칸에 있는 고추와 양상추까지 합해 모두 9천1백원이다.
문짝의 음료수와 계란도 살펴보았다. 맥주 4명,1ℓ짜리 음료 2병,주스 1병,우유 1ℓ,캔음료 5개,계란 15개에 버터·치즈·햄 등을 합쳐 2만5천8백70원이 들었다. 냉동실의 아이스크림 한통,1주일분 고기 2근,멸치 한봉지,냉동만두·북어·오징어를 합치면 모두 3만4천5백원이었다.
총합계는 9만4천3백70원. 그나마 반찬그릇이 차지하는 공간을 제외한 액수다. 서씨의 살림요량으론 이런식으로 냉장고를 한달내내 채워놓으려면 32만5천원 가량이 든다는 계산이다. 쌀값·빵값과 반찬비까지 합쳐 한달에 30만원으로 잡았던 식비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는 액수다.
서씨의 남편은 모회사 차장. 아이는 여섯살난 딸과 1년2개월된 아들이 있다. 한달 소득은 2백만원정도. 남편은 생활비로 1백30만원정도를 주고 있지만 저금할 것을 떼고 나면 조금 모자라는 편이다. 특히 한달 식비 30만원중 과일 사는데 든 돈은 12만원으로 식비중 40%나 된다.
『과일값이 어떻게나 많이 드는지…. 사계절 어떤 과일도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왔다고 하지만 주위를 보면 요즘 수박·참외를 마음껏 사먹는 집이 드물어요. 산지에서는 이렇게 비싸지 않을텐데,농산물 유통이 문제라는 얘기가 실감이 나요.』 서씨의 소박한 「UR농정론」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월평균 도시가계소득은 1백48만원이었다. 이중 소비지출액은 99만원으로 식료품비가 29만원이며 여기에는 과일값이 2만1천원,육류값이 3만9천원,외식비 8만1천원 등이 들어가 있다.
이와 비교하면 서씨의 경우는 아이들을 위해 과일을 많이 사는 편이다. 대신 고기를 덜 먹고 외식도 가급적 삼가고 있다. 어찌됐든 과일을 먹고 싶은대로 사먹는 집은 드물다. 우리 국민이 우리 과일을 저렴한 가격으로 마음껏 사먹는 날은 언제나 오게 될까.<곽보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