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검찰' 공정위 상대 … 검찰, 사상 첫 압수수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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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처음으로 압수수색했다. '사법검찰'이 '경제검찰'이라 불리는 공정위 사무실을 뒤지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최재경 부장검사)는 지난 12일 오후 정부 과천청사의 공정위 카르텔정책팀 사무실에 2명의 수사관을 보내 하수관거정비 민간자본 유치사업(BTL)의 조사 서류를 압수해 가져갔다.

공정위 정중원 카르텔정책팀장은 "담합을 자진신고한 기업에 대한 비밀을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협조를 거절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관들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한 뒤 "수사에 필요하다"며 해당 기업의 서류철을 찾아내 가져갔다. 이에 대해 최재경 특수1부장은 "담합혐의를 받고 있는 건설사들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번 압수수색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을 놓고 검찰과 공정위의 알력이 불거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하수관거정비 BTL 입찰 담합은 이미 지난 7월 종결한 사안이다. 공정위는 대우건설 등 7개 대형 건설업체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364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담합을 자진신고한 기업에 대해 과징금을 줄여주고 검찰 고발도 면제해줬다. 공정위가 운영하고 있는 '자진신고 감면제도'(리니언시)에 따른 조치였다.

문제는 똑같은 사건을 검찰도 수사해왔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사관들은 공정위에 대해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 협조를 요청했지만 공정위는 '자진신고자에 대한 비밀유지 의무 규정'을 들어 이를 거부해왔다.

이번 압수수색을 놓고 법조계와 경제계 일각에서는 검찰과 공정위의 힘겨루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공정위는 리니언시 제도는 물론 전속고발권(기업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을 경우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 검찰의 기소가 가능한 제도)을 갖고 있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라 내년 4월부터 '동의명령제'도 도입된다. 동의명령제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이 조사와 피해구제에 협조하면 공정위가 제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이런 흐름들이 계속 이어질 경우 공정거래 위반 사건에 대한 공정위의 파워는 커지는 반면 검찰은 상대적으로 수사영역이 좁아지게 마련이다.

검찰은 이번 담합 사건에 대해 공정위 고발 사건을 주로 맡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대신 특수1부에 맡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수1부는 각종 대형 의혹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처리한 부서다.

압수수색을 당한 공정위는 난처한 입장이다. 검찰 수사에서 자진신고자에 대한 비밀이 공개되면 해당 기업이 반발할 게 뻔하고, 앞으로 기업들의 자진신고도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손해용.정효식 기자

◆리니언시(leniency)=담합 혐의를 스스로 인정하거나 고발하면 처벌을 감면해 주는 제도. 영어로 관용을 뜻한다. 범죄조직을 고발하는 조직원에게 형을 깎아주듯 기업 간의 지능적인 담합을 고발하는 기업에 처벌을 낮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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