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방식 유통구조 쌀값 안정 일궈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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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쌀값은 왜 안오를까.지난달 가계부를 정리하던 주부 李炳善씨(34.경기도 광명시)가 문뜩 떠올린 의문이다.80년대이후 최악의 흉작이라던 작년 쌀농사가 생각났다.작년에 재배량이 조금 줄었다고 연초부터 폭등한 파값에 비하면 쌀값은 신기 하다 싶었다. 지난달 李씨가 동네 슈퍼에서 들여온 일반미 한가마값은 12만1천3백원.작년말에 비해 1.5%정도가 올랐지만 지난 2월에비해서는 오히려 2천원정도 떨어졌다.왜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경쟁 덕분이다.쌀의 유통과정에 시장기능,즉 경쟁체제를 도입한 작은 정책변화가 쌀값을 안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농림수산부는 지난 1월부터 아직 도정공장에서 찧지 않은 조곡상태로 보유중인 정부미 방출방식을 종전의 정가매출제에서 경매방식으로 완전히 바꿨다.
경매 참여공장도 종전에는 정부지정공장 1백50개소로 묶어두었던 것을 일반 도정공장과 미곡종합처리장,도정시설을 갖춘 산지 단위농협등을 합쳐 5백여개소로 늘렸다.방출가를 정해놓고 조곡을내다보니 도정공장들이 품질향상이나 원가절감에 의 욕을 보이지않는데다,양곡증권 이자만 하루 16억원씩 늘어나는 양곡관리비용부담을 한푼이라도 줄여야하는 절박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소비자들이 쌀을 살수 있는 판매장도 대폭 늘렸다.작년까지는 허가받은 전문양곡상과 대형 슈퍼들만이 쌀 판매를 독점했으며 특히 양곡상들의 가격조작이 심했다.
그러나 올들어 쌀 판매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면서 대부분의 슈퍼.편의점이 판매에 가세해 이달말부터는 동네 구멍가게도 5㎏이상의 포장 쌀을 팔 수있게 돼있다.작년말 3만4천개소이던쌀가게가 4월까지 4만개소 이상으로 늘어나다보니 자연 경쟁이 치열해질수 밖에 없다.
이런 경쟁체제의 결과는 유통과정의 마진을 줄여 농민과 소비자모두에게 이익을 주고 있다.조곡경매제로 산지에서 도정업체들간에물량확보 경쟁이 가열되면서 작년에 수확한 쌀의 산지가격(농민들이 받을수 있는 가격)은 4월현재 가마당 10 만4천1백37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가량 올랐다.
반면 소비자가격은 4월현재 12만1천3백30원으로 1년전에 비해 1.2% 오르는데 그쳤다.
도매상을 거쳐 소비자까지 가는 유통과정의 마진은 작년 4월에가마당 15.4%(1만5천9백89원)였으나 금년 4월에는 13.7%(1만4천6백60원)로 줄어들었다.농림수산부 白顯基양정국장은『작은 정책변화가 이처럼 큰 효과를 가져올지 몰랐다』고 솔직히 말한다.금년 쌀값에 숨어있는 이런 「경쟁의 미학」은 UR이후의 우리 농정과 농산물 유통구조개선에 두루 중요한 시사점을던져주고 있다.
〈孫炳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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