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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자'는 나눔의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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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16일 오전 10시 대전시청 2층 로비. 초등학생 2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가 나타나 로비 한구석에 돗자리를 깔았다. 어린이는 자신이 갖고 놀았을 법한 장난감과 동화책을 돗자리 위에 가지런히 진열했다. 이어 큰 종이에 매직 펜으로 글씨 몇 자를 비뚤배뚤 적고는 사라졌다. 종이에는 '무조건 200원, 돈은 무인 수금통에'라고 적혀 있었다.

기부와 나눔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16일 서울.대전.전주.부산에서 열린 '위아자 나눔장터'에서 목격된 장면이다. 위아자는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을 팔아 챙긴 수익금으로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들을 돕자'는 시민 축제다. 올해로 3회째인 이번 나눔의 축제에는 전국에서 30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참여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어린 자녀가 포함된 가족들이었다. 이날 좌판에는 동화책.딱지.카드.인형과 작아서 못 신게 된 신발과 양말, 머리핀 따위가 등장했다. 평소 서랍 속 깊은 곳에 처박혀 있거나 쓰레기통에 버려졌을 것들이지만 장터에서는 나눔을 베푸는 소중한 물건들이었다.

경기도 구리시 해나라 유치원생들이 16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북측 광장에서 열린 위아자 나눔장터에서 고사리 손으로 물건을 보여주며 흥정을 하고 있다. [사진=김성룡 기자]

"현원이가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는 장난감이지만, 이런 것들을 좋아할 만한 동생들도 있어. 장터에서 팔아서 어려운 친구들을 돕자."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행사장에서 만난 박해룡(39)씨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인 현원이를 이렇게 설득했다. 그는 "장터에 참여하기로 하고 물건을 고를 때부터 절약과 나눔의 의미를 가르칠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날 장터에는 부산 해운대고, 전주 중앙초등학교, 경기도 구리시 해나라유치원 같은 교육기관들의 참여가 줄을 이었다. 모두 수익금을 기부하면서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해를 거듭하면서 단골 참여자도 생겼다. 3년째 '개근'한 이건호(경기도 고양시 지도초등 6학년) 어린이 가족은 "위아자에 내놓을 물건을 1년 동안 모으는 습관이 생겼다"고 자랑했다.

단골 참가자 중에는 외국에서 벼룩시장을 경험한 사람도 많았다. 이들은 "선진국에서는 벼룩시장이 흔하지만 위아자 장터처럼 재활용품을 판 수익금으로 어려운 처지의 어린이를 돕는 행사는 거의 없다"면서 위아자 장터의 기부정신에 공감했다.

이날 오후 4시 위아자 장터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대전시청 로비의 '무인 좌판'에 소년과 아버지 박은도(40)씨가 나타났다. 부자는 물건 대신 수금통만 남아 있는 좌판을 정리하고 발걸음을 기부금 접수처로 옮겼다.

"아이가 절약과 나눔의 기쁨을 얻었을 겁니다. 이런 기부의 축제는 앞으로 계속되고 번성해야 합니다."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부금 접수처를 떠나는 박씨의 마음은 가볍기만 했다.

성시윤 사회부문 기자 ,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