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조계종 元老회의의장 慧菴스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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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금년「부처님 오신 날」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이 실로 오랜만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종단내의 구악을 씻어내고 있기 때문이다.『문민정부 들어와 사람과 정신이 바뀌는 진정한 개혁이 우리 종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이번 조계종의 개혁을 선두에서 이끌어온원로회의 의장 慧菴스님(해인사 방장)을 해인사 원당암에서 만나석탄일의 의미와 개혁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먼저 큰스님께서 종단개혁의 일선에 나서게 된 동기와 앞으로의 방향은.
▲개혁회의 개회식때도 강조했지만 우리종단에 문제가 생긴 것은어느 특정인의 잘못이 아니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데 특히 종단의 책임을 맡고 있는「어른」들의 책임이 컸다고 본다.
사회도 그렇듯이 종교도 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이 공동책임.
공동의식을 느낄 때 문제해결이 쉬워진다.일부에서 종단의 권위가실추됐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패는 성공의 모태다.크게 실패할수록 성공 또한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과거 종단의 비리를 거울삼아 앞으로 나아간다면 어려움이 없으리라 본다.악이없이 선이 없다.그런 점에서「서의현」은 조계종단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이다.
-일부에서는 큰스님께서 종정이 되리라고 예견했는데.
▲작은 일과 큰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작은 일에 매달리면 큰일을 망치게 된다.종단개혁의 일선에 나선 사람이 종정이 된다면 과연 그 일이 제대로 되겠는가.인물이 많이 있지만 月下종정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금년 세수 75세,법랍 50세인 혜암방장은 25세때 백양사로출가했다.이곳에서 서옹스님(전 종정)의 추천으로 해인사로 옮겨26세에 인곡스님을 은사로 효봉스님에게서 비구계를 받았다.이후설악산 백담사,오대산 월정사,문경 봉암사.김 룡사등에서 장좌불와의 수련을 쌓았다.性徹종정이『중노릇 제대로 하는 사람은 돌아가신 지월스님과 혜암뿐이다』고 할 만큼 山門의 모범이 됐다.해인사의 발상지인 원당암을 지켜오기 15여년.축대와 잔디밭.채소밭 하나까지 그의 손때가 묻지않은 곳이 없다.백장청규를 몸소 실천해 제자들에게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고 강조,지금도 하루 한끼로 생활한다.
五尺短軀지만 젊어서는「호랑이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자자했다.실제로 그는 6.25 전후 오대산이나 태백산에서 여러차례 호랑이와 눈싸움을 벌였다고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지금도 용맹정진하는 제자들이 있습니까.승려교육도 많이 현대화(?)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있다.해인총림만 해도 1년에 두 세차례 공부시킨다.용맹정진이나 장좌불와란 것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결국깨달음에 이르는 한 방편일 뿐 그자체에 매달린다면 이 또한 헛것이다.세상에서는 文字지식을 중시하나 우리는 識 字(알음알이)지식을 통해 진리에 도달한다.문자란 뭔가.사물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佛家의 공부는 부처에 얽매여도 안되고 법에 얽매여도 안된다.더구나 승려(스승)에 얽매여도 안된다고 가르친다. -이와 관련,스님께서는 승려는 가난해야 한다고 역설하신다는데. ▲승려를 雲水衲者라고 하지 않는가.누더기 옷을 입고 뜬구름처럼 다니는 사람을 가리킨다.옷만이 아니다.집도 음식도 이와같아야 한다.고행난행이 없으면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등따뜻하고 배부른데 도를 닦을 마음이 어디서 나오겠는가.그 래서 나는특히 三常(의식주)이 부족해야 道心이 나온다고 강조한다.
-이번 개혁불사와 관련해 서암종정에 대한 불신임이나 전총무원장 의현스님에 대한 치탈도첩은 불교의 자비심과 거리가 멀다는 이견도 있는데.
▲은혜가 원수가 된다는 말이 있다.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길은 오히려 원수가 돼야 한다.옛 성현들을 보면 모두가 극진한 원수가 있어 성인이 빨리 됐다.공자에게 도척이,소크라테스에게 악처가,예수에게 사탄이 있었다.물론 석가에게도 마 왕 파순이 있었다.아마 서암종정이나 의현스님은 이번 기회를 통해 이를 악물고 도통의 길로 나아갈 것으로 기대한다.사자가 새끼를 기르는법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자비나 사랑만이 능사는 아니다.
-원로회의나 개혁회의측에서 공권력개입과 관련,정부의 사과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는데.
▲그 얘기는 언급하지 않으려 했는데….사실 대통령이 정확한 내용을 모르시는 것 같아 안타깝다.윗사람 노릇하려면 바른말 하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아무도 정확한 보고를 하지않은 것같다.나는 능변은 아니지만 바른말은 할 줄 안다 .만나는 기회가 있으면「만약 대통령이 사과하지 않고 넘어가면 앞으로 일하기어렵소.바른말 하는 사람이 은인인줄 아시오」할 작정이다.
-말머리를 바꿔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좋은 법문을 듣고 싶은데. ▲육신을 쓰고온 싯다르타가 부처가 아니다.그분의 마음이오로지 부처일 뿐이다.부처님의 몸도 중생이 만든 것이다.절이나等身佛을 보고 아무리 절을 해도 소용없다.
바다 가운데 파도가 일때 큰 파도나 작은 파도가 다 파도이듯이 성인의 마음이라고 해서 바다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니다.성인이나 개똥벌레도 그 마음에는 차별이 없다.그것을 알면 여기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없다.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 마음을잡으면 천하를 얻는다.
-끝으로 스님의 원력이 무엇인지 들려주셨으면.
▲지장보살은 중생을 다 건지고 成佛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내가먼저 깨달아 남을 구제하는 것이 願이다.내 참다운 모습을 바로보는 것,그 일 이외에는 다른 일이 없다.세상사람을 두고 발원한다면「내가 살려면 남을 이롭게 하라」는 말밖에 없다.남을 도와주는 일이 곧 내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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