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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벌목공/탈주과정 도운 「숨은 공로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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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KBS 사회교육방송 귀순이끈 “1등 공신”/벌목장에 전파… 한국실상 알려/정부대책 불투명하던때 아지트 제공/선교사/사재털어 위조신분증·여권구입 앞장/기업인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일하다 탈출해 러시아를 방황하던 북한 벌목공 5명의 귀순이 이뤄지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고,고려인(재러시아 한국인) 등의 보이지 않은 도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5명의 벌목공이 김포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들의 탈주과정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도와줬던 「숨은 공로자」들이 화제에 오르며 『이들이야말로 훈장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앞으로 더많은 벌목공들의 귀환,러시아측과의 관계를 고려해 귀순과정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이들의 탈출·귀순에는 KBS 사회교육방송과 재러시아 동포들의 위험을 무릅쓴 헌신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KBS 사회교육방송(국장 정량)은 이들의 탈출에 직접적인 동기를 제공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탈출시기와 경로는 조금씩 틀리지만 현지에서 벌목공에게 한국의 실체를 여과없이 알려준 것은 여의도에서 하바로프스크 벌목장으로 직접 전파를 쏘아댄 KBS 사회교육방송의 공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일가족을 이끌고 귀순한 여만철씨와 시베리아 임업소 출신으로 지난 2월 러시아 선박을 몰래 타고 부산항으로 들어온 박창환씨 등은 한결같이 『사회교육방송을 듣고 한국으로 갈 생각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지난 2월말에 귀순해온 최명학·김태범씨는 『사회교육방송에서 선배 탈출자인 장기홍씨의 방송을 듣고 탈출경로를 정했다』고 털어놔 사회교육방송이 탈북자들 사이에서 길잡이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현재 KBS 사회교육방송은 중국 및 러시아 등 동포를 위해 972㎐와 344㎐ 등 2개 주파수로 하루 총 97시간을 방송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벌목공을 위해 이들이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과 새벽시간대에 30분씩 「러시아동포와 함께」라는 제목의 특집프로그램은 이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KBS의 정량 사회교육방송국장은 이번 벌목공 도착에 대해 『사회교육방송의 설립 취지에 따라 45명의 방송국 직원과 함께 맡은바 소임을 다했을 뿐』이라며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곤란하나 지금도 벌목공을 포함,월 7백∼8백통 가량의 편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다음 이들이 탈출후 러시아에서 방황하며 탈출의 길잡이를 해준데는 러시아 및 한국인 목사·선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자신들의 거처를 탈출 벌목공들에게 제공해 북한당국자들의 감시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특히 정부가 지금처럼 공개적으로 벌목공 귀순정책을 펴기전에는 은신이 큰 문제였는데 현지 선교사·목사들이 발벗고 나서 도왔다.
한국·북한·러시아 3개국은 지난 92년 10월에 발생한 김명세사건 경우처럼 그동안 탈출자 송환문제를 둘러싸고 숨막히는 외교적 숨바꼭질은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하바로프스크와 모스크바 등에 진출한 한국 선교사들이 자신들 신상에 가해질지도 모를 위해를 무릅쓰고 탈북자들을 보호해주었다.
이밖에 현지 동포들과 사업차 러시아를 방문한 한국인들도 이들의 탈출과 귀순에 적잖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벌목공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신분증과 은신처다.
탈출 즉시 북한 공안당국이 눈에 불을 켜고 추적해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신분증과 은신처가 필요한데 고려인으로 불리는 현지 교포들과 상용으로 방문한 한국인들이 큰 도움을 주었다.
이들은 우선 탈출자들이 접근해올 경우 이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주는 것은 물론 지하시장을 통해 현지 신분증과 제3국 탈출에 필요한 여권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암시장에서 몰래 구입하는 위조여권과 신분증의 구입가격은 4백∼5백달러였다. 한달 50∼60달러를 받는 벌목공들로서는 엄청난 돈이다.
이같은 도움은 이제 정부간 공식채널로 귀순절차를 밟을 수 있기 때문에 더이상 필요가 없게 되었다.<최원기기자>
□벌목공 관련일지
▲91.5 소련,북한에 시베리아 벌목장 설치 근거인 조소 임업협 정(67년 체결) 경신거부 시사
▲91.10 최초의 탈북 벌목공 이정의씨(48) 귀순
▲91.11 벌목공 장기홍씨(29) 귀순
▲92.12 벌목공 강봉화씨(33) 귀순
▲94.2 벌목공 박창환씨(38) 러시아 선박 밀항,부산항으로 귀순
▲94.2 벌목공 최명학(35)·김태범(32)씨 위조여권을 갖고 러시아 항공편으로 귀순
▲94.2.28 정부 제1차 벌목공 대책회의
▲94.4.6 김영삼대통령 『북한 자극우려,벌목공문제 검토안해』 발언
▲94.4.13 김 대통령 『탈북 벌목공 인도적 차원에서 수용 결정』 발표
▲94.4.14 한승주 외무장관,러시아정부에 벌목공 관련 협조 요청
▲94.4.21 최동진 제1외무차관보,모스크바 방문 러시아정부와 벌목공 처리절차 협의
▲94.5.18 벌목공 최청남 등 5명 서울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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