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권영길 민노당 후보에 바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민주노동당이 그제 열린 당 대선 후보 선출대회에서 권영길 의원을 17대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지난달 20일부터 당비를 낸 진성(眞性) 당원만을 대상으로 전국 순회 경선을 치르고, 막판에 치고 올라온 심상정 후보와 권 후보가 결선투표까지 벌인 일련의 과정은 정당정치의 모범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경선 룰을 둘러싼 갈등이나 유령 선거권자 논란 같은 잡음 없이 활발하게 정책토론을 앞세운 점은 다른 거대 정당들에 신선한 자극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권 후보의 정책공약이나 후보 당선 직후 밝힌 포부를 보면 이번 대선에서도 기성 정치의 대안 세력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에는 요원해 보인다. 무엇보다 정책의 현실성이 문제다. 권 후보는 유아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무상의료를 제도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부유세를 도입해 서민복지에 쓰겠다고 했고, ‘100만 민중대회’를 조직해 한·미 FTA 반대운동을 벌일 계획도 밝혔다. 공약들이 한마디로 말해 돈을 벌기보다 펑펑 쓰는 일에 집중돼 있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대학 진학률이 82%나 되는 나라에서 이런 공약들이 과연 현실적이고 타당하다고 보는가. 그러니 아직도 철 지난 이념에 사로잡혀 있거나 선심성 포퓰리즘의 소산이라는 의문이 이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정책이나 자세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국민이 많다는 점을 권 후보는 명심해야 한다.

2000년 창당한 민노당은 색깔 뚜렷한 진보정당이라는 이미지와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거부감을 자산으로 성장해 왔다. 덕분에 총선·지방선거에서 12~13%를 기록하는가 하면, 현재도 원내 제3당이라는 작지 않은 정치적 비중을 점하고 있다. 우리는 권 후보와 민노당이 이번 대선을 계기로 구름 위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본다. 합리적 정책 대안으로 민심과의 괴리를 좁혀야 지지층 폭과 당의 외연이 넓어진다. 대선에서의 권 후보의 선전(善戰)이 여타 거대 정당의 분발과 개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