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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과정 이래도 되나(사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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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른바 농안법 파동은 갈수록 가관이다. 문제의 핵심인 중매인의 도매금지조항이 당초 법안에는 없었는데 막판에 한 여당의원이 단독으로 삽입했다는 폭로가 나오는가 하면,이를 둘러싸고 현직 차관과 여당의원간에 설전을 벌이는 전대미문의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도대체 여당이 개혁입법이라고 자랑하는 법안의 핵심이 축조심의가 끝날 때까지 빠져있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뒤늦게 발견한 의원이 그 조항을 빠뜨린 비서관을 즉각 해임하고 삽입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차관과 의원중 누구 말이 맞는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렵지만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입법과정을 보면 여러가지 의혹과 의문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로비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과 국회·농림수산부 등 당사자들은 명백히 진상을 가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농안법 파동을 보면서 한마디로 국회의 입법과정이 난맥·엉망임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차관과 의원이 함께 인정하다시피 핵심조항을 빠뜨리고 축조심의를 끝낸 것은 사실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축조심의에서는 뭣을 했다는 것인가. 또 그 조항의 누락을 비서관의 책임으로 설명하는 것을 보면 입법과정에 비서의 역할이 상당함을 느끼게도 되고,뒤늦게 회람을 돌려 삽입했다니 국민의 권리·의무를 규정하는 법을 이런 식으로 주물러도 되는 것인가.
법안심의소위의 이런 난맥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농림수산위 전체회의는 소위의 안을 그대로 통과시켰으니 소위에 참여하지 않은 10여명의 다른 의원들은 그냥 거수기 노릇만 한 셈이 아닌가.
이 농안법뿐 아니라 국회의 평소 입법과정을 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보통법안이 해당 상위에 넘어가면 질의 한번없이 소위에 회부되고,소위에서는 회의기록 하나 남기지 않고 심사하는 것이 예사다. 이번 농안법도 질의없이 소위로 직행했고,소위의 회의록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소위의 안이 전체회의에 넘어오면 대개 그대로 넘기는 것이 보통이고,최종단계의 본회의에서는 『이의없소』하는 소리로 그냥 「법」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런 허술한 입법과정으로 상호 모순되는 조문,무슨 뜻인지 모호한 조문이 양산되고 뒤늦게 입법의 주역들인 의원 가운데서 그런 내용인줄 몰랐다는 기막힌 소리까지 나오는 판이다. 여북하면 지난번 국회제도개선을 연구한 개선위가 상위 전체회의의 축조심사를 의무화하자고 제의했을까.
우리는 여기서 농안법 로비의혹을 일일이 제기하지는 않겠지만 입법과정의 의혹은 분명히 밝혀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국회는 스스로 입법과정의 소홀과 무성의를 반성하고 보다 철저한 심의를 위한 제도개선과 의원들의 자각 있기를 촉구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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